좋은 문장이 일렁일렁 춤을 추며 마음을 건드린다. 잘 맞춰진 하나의 문장이 가슴에 내려앉을 때마다 마음에 밑줄을 긋는다. 읽는 소설의 즐거움, 그 즐거움의 시간을 늘 내게 선물하는 작가, 김애란. <두근두근 내 인생>으로 처음 만난 작가는 내게 탐독의 폭풍을 선물하진 못했지만 늘 애써 꺼내보는 한 권의 책을 선물한다. 이번 소설은 유독 어딘가에 새겨질 문장을, 매우 좋은 마음을 나에게 줬다.
책을 관통하는 이야기는 ‘선의(善意)’에 관한, ‘어찌할 수 없는 내 안의 부끄러움’에 관한 것이다. 누군가에게 건네는 나의 선의가 진짜일까? 내세움의 또 다른 모습인가? 받아들이는 나의 마음은 진심인가? 작가의 전작 <이중 하나는 거짓말>처럼, 요즘 작가의 고민은 내면의 본질에 관한 탐구인가? 이 책은 ‘본질’에 대한 두 개의 감정을 두고 고민한 문장들로 가득하다.
“작가로서 당신이 누군가에게 뭔가 뺏고 싶다면 그에게 먼저 그걸 주어라.”(p.43)
“눈 깜짝할 사이 폭삭 늙어버린 엄마가 보낸 ‘고맙다’는 문자를 보자, 이상하게 그 말을 받은 게 아니라 언젠가 내가 상대에게 준 무언가를, 아니 오랜 시간 상대가 내게 주었다 생각한 무언가를 도로 빼앗은 기분이 들었다.”(p.86)
“그럼 정말 알아서 하든지 아님 그냥 고맙다고 하든지, 둘 중 하나만 하자.”(p.89)
“젊은 시절, 나는 ‘사람’을 지키고 싶었는데 요즘은 자꾸 ‘재산’을 지키고 싶어집니다.”(p.141)
단편 <홈 파티>는 선의를 건네는 자들의 알량함을, <숲속 작은 집>은 그것의 허영심을, <좋은 이웃>은 선의를 잃어가는 자의 서글픔을, <이물감>은 선의를 잃었다 여기는 자의 구역질을 점진적으로 그려간다. 그 점진적인 과정을 따라가며 독자는 나의 마음이 어디쯤에 머물러 있는지, 나는 어떠했는지를 곰곰이 생각하며 얼굴이 붉어지는 어찌할 수 없는 부끄러움과 마주한다.
이후의 단편 <레몬 케이크>, <안녕이라 그랬어>, <빗방울처럼>에서는 그 어찌할 수 없는 부끄러움 속에서도 우리는 “큰 교훈 없는 상실. 삶은 그런 것의 연속이라고.”(p.246) 말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살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레몬 케이크>의 기진처럼 망해가는 서점을 부여잡은 인생임에도 샴페인의 병을 지금 딸지 말지 고민하고, <안녕이라 그랬어>의 나처럼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내 쪽에서 먼저 원곡 위에 ‘안녕’이란 한국어를 덧씌워 부른다고. 우리 삶에는 그렇게 틀린 방식으로 맞을 수밖에 없는 순간이 있고 아마 나는 그걸 네게서 배운 것 같다고.”(p.253) 말하면서 말이다. 툭툭- 낙수가 떨어지는 아파트에서 <빗방울처럼>의 지수가 들었던 “한국어가 모어가 아닌 이가 건넨 정중한 문장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p.293) 를 서로에게 건네면서, 그제야 지수처럼 “그동안 누군가로부터 그 말을 얼마나 듣고 싶어했는지 깨달(p.294)”으며 그렇게 살아가야 함을. 어리석은 나는 책을 덮으며 다시금 목도한다.
나는 어떤 이에게 ‘안녕이라 그랬어’말을 건넬 수 있을까? 건넬 수 있는 선의가 나에게 남아 있던가.
그러니까…… 망망대해라는 건 무엇일까요. 몽상가에게는 세속을 떠난 풍경일 것이고 어부에게는 고단한 생계의 공간이겠죠. 생물학자에게는 어류들의 서식지일 거예요. 어린 시절을 바닷가에서 보낸 사람에게는 고향의 이미지이겠지만 내륙에서만 살아온 누군가에게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사진 속 풍경일지도. 세상은 그렇게 수많은 망망대해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당신에게 망망대해란 무엇입니까. -9P.- / 망망대해茫茫大海 : 한없이 크고 넓은 바다.
무더운 한 여름날, 문득 서가를 둘러보다 어느 한 책의 제목을 보고 시선을 고정했다. 지금의 계절에 대해 머릿속으로 스쳐 지나간 여럿의 감정과 생각을 한 줄의 제목으로 대변해 주는 <뜨거운 유월의 바다와 중독자들> 책. 몽상적인 느낌이 강한 표지. 그 당시에는 과연 이 책을 보고 나면 날씨가 무더워 지친 육신 대신 내 머릿속과 마음이 조금이라도 시원하게 해줄 수 있을까 하는 얕은 기대감을 지니며 선택했던 것 같다. 책을 서가에서 꺼내 아주 자연스럽게 대출하러 가는 그 찰나의 순간에 말이다. 사실 처음 읽었을 때는 특별한 줄거리가 없기에 너무 어렵다고 느껴 작품 해설을 여러 번 읽어보고 다른 사람들의 서평들을 참고해서 다시 나만의 방식대로 해석해 본 묘한 책이다.
모수와 연, 천과 한나의 삶을 그려내는 소설. 북극의 빙하가 녹아버리고, 40도가 넘는 6월의 이상 기후 변화로 뜨거운 해안 아래, 사라져가는 무도의 ‘해변 모텔’에서 시작된다. 위에서 네 명의 이야기라고 언급했지만, 이 소설은 연과 천의 이야기로 구성된다. 연의 배우자이자 해면 모텔의 주인이었던 모수, 모수와의 사별을 겪은 연은 자연스레 해변 모텔을 대신 운영하게 된다. 연극배우인 천. 배역을 맡을 때마다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는 천은 연인인 아나운서 한나와 해변 모텔에서 장기 투숙객으로 지내다가 한나의 전남편이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천에게 이별을 통보한다. 이들이 살아온 인생은 차갑고 회색빛이 연상되는 해변에서 홀로 거니는 만큼 고독하고 처연하다. 이들에게 해변은 우리가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바다의 낭만과 휴양의 장소가 아닌 각자가 지닌 기억들과 머릿속의 끊임없는 생각들과 질문들이 펼쳐졌다 감춰지다 결국 잠기는 곳이다. 작가가 언급한 망망대해에 잠겨가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곳,
나에게 망망대해는… 무겁게 밀려오는 파도의 세계입니다. 밀려와서 돌아가지 않는 물의 세계입니다. 물의 세계에 잠겨가는 사람의 표정입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고요? 무슨 말인지는 당신도 알고 있지 않나요? 이미 알고 있지 않나요 당신도? 우리는 지금 함께 망망대해를 건너가고 있잖아요. -10P.-
함께 망망대해를 건너가고 있다는 글귀에 나의 망망대해에 대해 생각해 본다. 현재 나의 삶을 관철하고 떠올려보는 망망대해란 어떤 모습인지. 단순히 덥다는 이유로 제목에 이끌려 선택한 책이지만 예측하고 살짝 기대했던 것과는 전혀 다르게 책 속 이야기를 통해 삶과 망망대해를 연관 지어 생각해 볼 수 있게 된 한 여름의 책이다.
<밤새들의 도시>를 읽고 있자니, 마치 무대 뒤에서 땀과 함께 서 있는 한 사람을 몰래 훔쳐보는 기분이 들었다. 스포트라이트 아래의 화려함은 찰나였고, 그 뒤엔 끝없는 연습과 고독, 그리고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잔혹한 사랑이 있었다.
주인공 나탈리아는 세계적인 발레리나다. 그러나 절정의 순간, 부상으로 모든 것을 잃고, 2년 동안 무대와 거리를 둔 채 살아가다 고향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온다. 돌아온 이유는 단 하나, 다시 날기 위해서다.
하지만 날아오른다는 것은, 단지 발끝으로 서는 일이 아니라 자신을 끝까지 몰아세우는 일이라는 걸 그녀는 다시 깨닫고, 그 과정에서 발레를 처음 사랑하게 된 마음 또한 점점 닳아 없어진다.
글을 읽는 내내, 의문이 생겼다. “나는 지금 내가 좋아서 이 일을 하는가? 아니면 잘해야 하니까, 보여주기 위해서 하는가?”
이 책이 빛나는 건, 단순히 한 예술가의 재기담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 더 높이 날고 싶은 욕망과 그 욕망이 가져오는 소모 사이에서 버티는 이야기다. 나탈리아에게 발레는 생명이었지만, 동시에 그녀를 서서히 잠식해 가는 그림자이기도 했다. 그 이중성 속에서, 그녀는 스스로를 잃어가고, 다시 찾으려 한다.
글을 읽다 보면, 이 이야기가 발레만의 세계가 아니라는 걸 깨닫는다. 우리는 누구나 한 번쯤, 처음의 마음을 잃는다. 좋아서 시작했는데, 어느새 잘해야 하는 일이 되고, 타인의 시선 속에서만 의미를 찾게 되는 순간이 있다. 그때 우리는 더 잘하려고 애쓰지만, 그만큼 자신과 멀어진다.
이 책은 바로 그 지점에서 멈춰 서게 한다. “너는 왜 시작했니? 네 날개는 어디로 가고 있니?”
책을 덮고 나면, 나탈리아의 숨소리와 함께 내 숨도 가빠진다. 그녀는 완전히 승리하지도, 완전히 무너지지도 않는다. 대신, 아주 오래 버틴다. 그것이 어쩌면 ‘날개를 지키는 법’일지도 모른다.
발레에 관심이 없어도, 예술과 거리가 멀어도, 충분히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삶이 너무 빠르게 흘러가서 방향을 잃었을 때, 혹은 좋아하는 마음이 의무로 변해버린 순간에, 이 책을 읽으면 좋겠다. 도시의 어둠 속, 날아오르기 전 숨을 고르는 한 밤새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잃어버린 ‘처음의 마음’을 다시 발견하게 될 수 있다.
요즘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서 방영 중인 ‘케이팝 데몬 헌터즈(K-Pop Demon Hunters)’가 큰 인기를 얻고,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선보인 굿즈는 품절 사태를 일으키는 등 한국문화는 여전히 전 세계의 주목 받고 있음을 실감한다. 단순한 유행을 넘어, 한국인의 문화적 힘이 얼마나 생생하게 살아 있는지를 체감하며 자연스레 자긍심을 느끼게 된다. 이건 우리의 내면에 흐르는 ‘한국인의 에너지’가 오늘날 문화로 빛을 발하고 있다는 증거 아닐까? 홍대순 작가의 한국인의 에너지는 바로 그 힘의 근원을 탐구하는 책이다. 저자는 총 6부로 책을 구성하여 한국인의 에너지를 다양한 시각에서 살펴본다.
1장에서는 저자가 ‘한국인 에너지’를 흥과 끼로 무장해 신명과 신기를 풀어내는 특질로 정의하며, 한국이 자원은 부족해도 정신적으로 풍부한 나라임을 역사와 문화 속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2장에서는 문화 사대주의에 치우친 우리의 모습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한다.
3장에서는 한국 정신의 역사적 배경과 그 위에서 실천을 통한 나라와 이웃을 위해 헌신한 인물들을 조명한다. 4장에서는 고대부터 한국이 세계와 교류하며 쌓아온 글로벌 역량을 살펴본다. 5장에서는 한국의 역사와 문화유산이 단순한 기록을 넘어 현대의 경제와 기술력으로 연결되는 국부 창출 자원임을 강조한다. 6장에서는 미래 한국의 비전을 제시하며 풍요로운 사회적 자본, 정신 한류, 홍익인간 정신 등 한국이 세계에서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한다.
저자는 한국인의 힘이 단순한 성실함이나 단결력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위기의 순간에 발현된 회복력과 창의성, 그리고 자유분방함에서 나온 우뇌형 통찰력임을 강조한다. 비빔밥처럼 조화를 이루는 문화적 전통, ‘감 잡았냐’라는 직감 중심의 표현까지, 우뇌의 직관력이 얼마나 깊이 작동해왔는지를 설명한다. 이런 관점은 K-문화가 전 세계로 퍼지고, BTS와 블랙핑크와 같은 K-팝 스타가 탄생하며 오징어 게임 같은 작품이 성공하고 박물관 굿즈 열풍이 일어나는 이유를 이해하는 데도 중요한 단서가 된다.
“이제 인간에게 남은 것은 창의의 심장인 ’우뇌‘ 뿐이다.“ -74p
그러나 한편으로는 ‘과열된 경쟁문화’, ‘자기 검열에 가까운 집단 압력’ 등의 부정적 에너지에 대한 언급이 부족한 점은 다소 아쉽다. 이러한 무게를 함께 다루었다면, 보다 균형 잡힌 분석이 되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책은 한국인의 정체성을 다시 생각하고 우리 사회가 움직이는 근본적인 힘이 무엇인지 돌아보게 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나 역시 개인의 성취를 넘어 공동체의 힘과 정체성와 함께 성장하는 삶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오늘의 한국 사회와 문화 현상의 통찰과 지금 우리가 누리는 활력과 자부심의 뿌리가 궁금하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홍익인간 정신은 우리에게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알려준다. 스스로 좋은 인간이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타인과 사회, 더 나아가 인류에 이로움을 주는 존재로 살아가고자 방향성을 제시한다. 이러한 이타심은 궁극적으로 우리 자신의 삶을 윤택하고 행복하게 만들어주면서 보람과 자긍심을 느끼게 해주는 원동력이 된다.” -251p.
정해연 작가의 장편소설 <2인조>는 제목 그대로, 한 팀을 이룬 두 남자의 이야기다. 이 책은 겉으론 범죄를 다루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오히려 인간의 밑바닥 감정, 현실의 무게, 그리고 ‘선과 악’ 사이에서 흔들리는 인간의 복잡한 내면을 다룬 심리 소설에 가깝다.
소설은 과거 교도소에서 만난 나형조와 김형래가 출소 후 다시 만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사회로부터 배제된 이들은 번듯한 직장도, 인간다운 삶도 꿈꾸기 어려운 상황. 결국 돈이 되는 일이라면 뭐든 하겠다는 심정으로 ‘2인조’로 다시 뭉친다.
그러던 중 이들에게 의문의 노인이 접근하고, 한 가지 믿기 어려운 제안을 한다. 거액을 줄 테니 자기 아들을 죽여달라는 청부살인 의뢰. 처음엔 단순히 돈에 끌렸던 이 제안은, 점차 노인의 진심과 과거가 드러나면서 전혀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노인의 사연은 이 소설의 분위기를 단순한 범죄극에서 한층 더 깊은 심리극으로 끌어올린다.
두 주인공은 악당이라기보다는, ‘어쩌다 여기까지 온 사회에서 밀려난 보통 사람들’이다. 처음엔 돈을 위해, 그다음엔 서로를 위해 움직이던 이들이 결국 각자의 선택 앞에서 갈등하고 무너져가는 모습은 단순한 긴장감 이상의 묵직한 현실감을 안긴다.
그리고 사건을 둘러싸고 형조와 형래의 갈등, 불안, 인간적인 고민이 점점 쌓여간다. 이들도 결국 누군가의 가족이었고, 누군가의 아들이었다. 돈 앞에서 흔들리고, 순간적인 선택으로 잘못된 길에 들어서지만, 그 안에는 살고 싶은 마음, 지키고 싶은 사람, 잊지 못한 가족이 있다.
정해연 작가 특유의 간결하고 날카로운 문장은 인물의 감정을 복잡하게 묘사하기보다는, 짧은 대사와 행동 묘사로 드러낸다. 각 인물의 내면을 세밀하게 묘사하면서도, 과하지 않게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덕분에 독자는 주인공들의 머릿속을 추측하게 되고, 그 불확실함이 더욱 몰입감을 준다. 전체적으로 이야기의 흐름은 빠르게 전개되지만, 인물들의 내면은 그만큼 천천히, 섬세하게 열리고 있다.
<2인조>는 단순히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 소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이면을 비추고 범죄를 다룬 이야기 속에 ‘사람’과 ‘가족’을 담아낸 소설이다. 이들이 정말 지키고 싶었던 건 돈이 아니라, 잃어버린 가족, 무너진 관계, 그리고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다는 본능적인 욕망이었는지도 모른다.
이 작품은 감정선과 사회적 메시지를 절묘하게 결합하여, 독자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다. 또한, 인간 심리와 관계의 미묘함을 포착하는 데 성공하며, 선과 악이라는 단순한 잣대로는 결코 가를 수 없는 인간의 복잡함을 그리며 읽은 후에도 오랫동안 여운을 남긴다.
현대는 돌봄의 시대이다. 아이부터 어른까지, 마을에서 지역사회로 돌봄은 사회 곳곳에서 이루어지고 그 영역과 대상은 계속 넓어지고 단단해지고 있다. 사회가 많은 역할을 담당하고 있지만 개인의 영역에서 돌봄의 숙제는 여전히 남는다.
<페퍼민트>의 백온유 작가는 ‘생애주기 속에서 대다수의 사람들이 통과하게 되는 간병의 가능성에 대해 우리는 대부분 회피한다’라고 이야기한다. 보호받아야 할 나이에 간병의 짐을 아빠와 나눠야 하는 주인공 시안의 이야기는 간병과 돌봄의 현실을 직면하게 한다. 도망도, 외면도 쉬운 일이 아니라 그저 닥친 엄마의 간병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시안. 열아홉 살 시안은 이렇게 자신을 다독인다.
“나는 엄마 덕분에 내가 안정적인 유년기를 보냈다고 생각한다. 엄마는 늘 나를 편안하고 자유롭게 해 주었다. 나는 고마움을 아는 사람이다. 보답을 할 줄 아는 사람이다. 나는 그렇게 나를 세뇌한다. ” - 본문 중 p.28-
갑자기 행방을 감춘 친구 해원이를 우연히 만나게 되면서 시안은 자신이 얼마나 세상에 낙오되어 있는지 새삼 느낀다. 책에서는 원망과 두려움과 불편함으로 뒤섞인 복잡한 감정들로 서로를 할퀴기도 하고 위로받기도 하는 시안과 해원의 감정이 놀랍도록 섬세하게 그려진다. 결국 해원에게 가장 큰 위협이 되는 자신을 스스로 멀리 떠나보내기로 하는 시안, 그렇게 아이들은 성장한다.
상쾌하고 알싸한 맛의 페퍼민트는 엄마를 돌봄과 동시에 시안에게도 평화와 쉼을 주는 차이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간병 생활에 점점 피폐해져가는 시안은 페퍼민트 차를 두고 간병인 최선희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따뜻한 위로를 받는다.
“너무 슬퍼하지 마. 모두 결국에는 누군가를 간병하게 돼. 한평생 혼자 살지 않는 이상, 결국 누구 한 명은 우리 손으로 돌보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야. 우리도 누군가의 간병을 받게 될 거야. 사람은 다 늙고, 늙으면 아프니까. 스스로 자기를 지키지 못하게 되니까.” -본문 중 p.192-
엄마를 요양병원으로 보내고 감옥에 간 아빠를 기다리는 ‘세상의 많은 시안’이 햇볕이 있는 곳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 ‘보통 사람들’의 진도에 맞춰 살아가기를 바란다. 또한 우리 모두가 한 번은 겪을 돌봄의 일상이 너무 지치고 힘들지 않도록 더불어 함께 하며 자신만의 ‘페퍼민트’를 찾아가기를...
“감염병을 겪으며 사람들은 우리 안에 도사리는 무수한 두려움을 공유했고, 서로를 염려하는 마음은 회복의 실마리가 되었다. 그 마음을 한 번 더 믿어 보고 싶다. 우리가 더 이상 피하지 않고 불안을 나눈다면 소중한 사람을 보호하면서 일상을 지속하는 삶과 소외되는 사람이 없는 세계를 이룩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므로 이 이야기가 상처와 고통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작은 희망에 대한 이야기로 읽히기를 바란다.” - 작가의 말 중에서
1953년, 우주개발이 아직 공상에 불과하던 시절. SF문학의 거장으로 불리는 아서 C. 클라크(1917~2008)는 인류의 진화와 우주의 거대한 지성에 대한 예리한 상상력을 소설 《유년기의 끝(Childhood’s End)》에 담았다. 스푸트니크 발사(1957) 전이었다는 점에서 느낀 충격과 작가에 대한 경외감은 시대적 맥락을 고려할수록 깊어진다.
당시 현실로는 상상조차 어려웠던 궤도 엘리베이터, 집단의식, 인공지능 등 미래 과학의 핵심 개념이 이 작품 안에서 자연스럽게 펼쳐진다. 과학적 사유를 바탕으로 우주를 예견한 작가의 시선은 70년이 지난 지금도 날카롭게 빛난다.
아서 C. 클라크는 통신 위성의 개념을 정립한 논문(1945)으로 유명하다. 이 공로로 지금도 지구 정지 궤도는 ‘클라크 궤도’라고 불릴 정도이다. 그는 우주에 대한 깊은 과학적 이해를 바탕으로 SF소설을 썼던 독보적인 인물이었다.
이야기는 거대한 우주선이 지구 상공에 나타나고, ‘오버로드’라 불리는 외계 지성이 인류 문명에 개입하면서 시작된다. 무력 대신 인류 스스로의 변화를 유도하며, ‘유년기’를 벗어나는 과정을 차분하고 웅장하게 그린다. 오버로드가 선사한 유토피아는 번영을 가져오지만 동시에 성장의 동력도 앗아간다. 소설은 인류의 진화와 소멸이라는 주제를 통해 인간 존재와 우주 속 위치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던진다.
클라크의 또 다른 대표작 《라마와의 랑데뷰》(1973)도 함께 읽어보길 권한다. 태양계에 나타난 거대한 외계 우주선을 탐사하는 이 작품은 미지에 대한 경외감과 탐험 정신을 생생하게 담고 있다. 두 작품을 나란히 읽는다면, 우주를 향한 인류의 상상력이 어떻게 확장되어 왔는지 한눈에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클라크가 평생토록 만나길 고대했던 외계지성과의 ‘최초의 접촉’을 그린 초기 대표작 《유년기의 끝》은 인류를 넘어선 존재, 지구를 넘어선 인간에 대한 클라크의 비전을 상징하는 아이콘 같은 작품으로 여전히 큰 사랑을 받고 있다. 게임 캐릭터로도 익숙한 ‘오버로드’, 20세기 말을 휩쓸었던 에바 열풍의 주인공 <신세기 에반게리온>에 등장하는 ‘인류보완계획’ 등도 바로 이 작품에서 빌려온 개념들이다.
작품 속에 담겨 있는 초고도의 지성을 가진 존재들의 시선을 통해 본 인류의 한계와, 이를 통해 인간이 스스로에게 품게 되는 질문들은 인간이 달에 착륙하기 무려 10여 년 전에 출간된 작품임에도 지금에도 여전히 유효하다.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새롭게 선보이는 특별판 《유년기의 끝》은 냉전 종식 후 새로운 세기에 대한 희망을 담아 개작한 (하지만 소련 붕괴 후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 1989년의 도입부와 반세기가 넘도록 사랑받은 자신의 대표작에 대한 클라크의 단상을 담은 2000년의 <서문>, 클라크의 가장 널리 알려진 팬인 작가 허지웅을 비롯, 탄생 100주년을 축하하는 한국 독자들의 애정 어린 축하 글들을 담아 더욱 의미 있는 판본으로 제작되었다.” - 출판사 서평-
얼마 전 안중도서관 재개관식에서 이대한 교수님의 강연을 들었다. 교수님은 인간의 노화 정복이 머지않았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으며 나는 곧바로 야마다 무네키의 <백년법>을 떠올렸다. 이 책 속의 이야기가 더 이상 공상만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옛사람들은 불로장생의 비법을 찾아 헤맸다. 우리는 그것을 미신이나 욕심으로 치부했지만, 지금의 우리는 어떤가. 주름을 없애기 위해 시술을 받고, 흰머리를 감추기 위해 염색을 한다. 결국 불로장생의 욕망은 다른 형태로 여전히 살아 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늙고 싶지 않아 한다.
<백년법>에 등장하는 HAVI(human, antiaging virus ino culation) 시술은 그런 인간의 욕망을 과학이 실현한 결과물이다. 노화를 멈추는 기술이 개발되자 사람들은 별다른 망설임 없이 시술을 받는다. 그러나 영생의 대가는 무겁다. 인구가 폭발하고 일자리는 사라지며, 사회는 정체에 빠진다. 결국 국가는 백 년이 지나면 반드시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는 법, ‘백년법’을 제정한다. 흥미로운 건, 이 시술의 이름 HAVI가 영어 단어 heavy와 같은 발음이라는 점이다. 늙지 않는다는 선택은 결코 가벼운 결정이 아니다. 영생은 달콤한 선물이 아니라, 견디기 힘든 ‘무거운(heavy)’ 짐이다.
처음엔 정의롭다고 믿었던 제도는 곧 또 다른 폭력이 된다. 죽기 싫은 사람들은 도망치고, 그들은 자유를 얻는 대신 정신이 붕괴해 간다. 영생이 축복이 아니라 저주로 변해버리는 순간이다. 반대로 HAVI 시술을 거부하고 자연스럽게 늙어가는 사람들은 오히려 신비롭고 존경받는 존재로 여겨진다.
야마다 무네키는 묻는다. “영생은 정말 행복인가?” 이 질문은 단순한 SF적 상상력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근본적 물음이다. 우리가 늙고, 쇠하고, 언젠가 사라지기 때문에 ‘지금’의 삶이 소중하다는 것을 잊고 사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한다.
<백년법>은 과학의 발전이 가져올 유토피아 뒤에 숨은 그림자를 들춰낸다. 신이 우리에게 준 ‘노화’는 결코 결함이 아니라, 삶을 완성하는 세심한 장치다. 죽음이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
이 작품을 덮으며 나는 생각했다. 불로장생은 신의 영역이며, 인간은 그 문 앞에서 늘 유혹받는다. 그러나 결국 우리는 늙어가며 사는 법을 배워야 하는 존재다. 그것이야말로 신이 우리에게 허락한 가장 배려 깊은 선물일지도 모른다.
“생명에 대한 인간의 욕망이 어떤 현상을 불러일으킬지를 경고하는 듯한 작가의 통찰력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영원한 젊음’에 대한 일그러진 욕망을 빌미로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인 생존권을 저버려야 하는 현실, 사회지도층의 ‘타인에 대한 생명’에 대한 권한과 특혜 등에 대한 조명은 우리가 엄혹한 미래로 가는 길목에 서 있음을 빗대어 보여준다.또한 미래 사회를 구성하는 또 다른 축인, 불로불사의 삶이나 백년법을 거부하며 인류가 만들어낸 기형의 사회에 반기를 드는 이들을 통해 ‘인간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라는 해묵은 물음에 숨결을 불어 넣는다. ‘사는 것’이 죄가 되는 사회 현상에 저항하며 인간성의 회복을 외치는 이들의 목소리는 작지만 깊은 울림으로 와 닿는다.”
스누피를 좋아하시나요? 빨간 지붕 집에서 살고, 노란 작은 새를 친구로 든 개입니다. 거의 D사의 M키가 세상에서 제일 유명하듯, 세계에서 제일 유명한 개일 것 같기도 하네요. 저는 스누피를 좋아합니다. 스누피 진짜 좋아한다고 말하며 신발, 티셔츠, 컵, 접시, 아기자기한 문구류를 그렇게 많이도 들였더랬었습니다. 여행지에서 일부러 스누피 카페를 찾아가기도 했습니다. 찰리브라운이나 스누피의 얼굴을 라떼 위에 그려주거든요. 좋아하는 도서 시리즈인 아무튼 시리즈에 누가 끼워준다고 하면 아무튼 스누피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정도로요.
그 생각은 아니 정확히 착각은 스누피 너무 좋아 노래를 부르며 제주도의 스누피 가든(피너츠 캐릭터를 기반으로 꾸며진 정원, 아무리 빨리 둘러봐도 2시간 이상 소요된다.)에 갔을 때 깨어지게 됩니다. 그곳의 전시물에서 내가 아는 스누피가 만화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아니, 만화 캐릭터라는 것은 알았지만 그것이 스트랩(신문에 연재되는 네컷만화)이라는 것은 모르는 척하고 있었나 봅니다.
그 수많은 캐릭터 상품을 탄생하게 하고, 모든 미국인을 열광하게 한 만화가 1950년부터 연재되었다는 사실도, 그 그림을 그린 만화가가 생각보다 수줍음이 많다는 것도, 그러나 시기가 시기이니만큼 전쟁에 참전한 경험이 있다는 것도 말입니다. 그리고 스누피는 알아도 오히려 찰리브라운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도 꽤 많을 거 같습니다.
이쯤 되면 왜 계속 스누피 얘기 중에 나오는 피너츠는 또 뭐야 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네요. 피너츠는 스누피가 나오는 만화의 원래 제목입니다. 귀여운 친구들이 아주 가득하죠. 하지만 마냥 귀여운 점을 강조하지는 않습니다. 친구들은 화내고 싸우기도 하고 가끔 투덜거리지만, 어떤 날은 즐겁게 놀기도 합니다.
심리적 의존증 중에 불안감을 줄이려고 애장품을 곁에 두는 행위를 블랭킷 증후군이라 무르는데 이는 등장인물인 라이너스가 항상 가지고 다니는 담요에서 유래합니다. 신기하죠? 이 작은 철학가들의 이야기를 보고 있으면 곰곰이 생각할 거리도 많습니다. 물론 50년간 연재되어 분량이 어마어마하지만 일단 한 권, 시작해 보면 어떨까요? 저도 아직 읽고 있는 중입니다. 50년의 시간이 한 번에 읽히지는 않을 거예요. 덧붙여, 제주에 가시면 스누피 가든 한 번 가보세요. 참 좋아요.
찰스 M. 슐츠가 빚어낸 전설적인 캐릭터 찰리 브라운과 친구들을 드디어 완전판으로 만난다찰리 브라운, 스누피, 슈뢰더, 루시, 라이너스, 페퍼민트 패티 등 인기 캐릭터들로 기억되는 만화 『피너츠 완전판』의 마지막 권인 25권이 독자들을 찾아왔다. 찰스 M. 슐츠가 50년간 연재했던 걸작 코믹 스트립의 일일 연재분과 일요 특별판을 하나도 빠짐없이 수록한 『피너츠 완전판』의 마지막 권은 1999년에서 2000년에 걸친 연재분을 모두 모았다.『피너츠』는 이발사의 아들로 자라난 찰스 M. 슐츠의 자전적 캐릭터인 찰리 브라운과 그의 친구들을 통해 때로는 코믹하고 때로는 날카롭게 세상을 그려낸다. <피너츠>의 미덕은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내면서도 품위와 균형을 잃지 않는 데에 있다. 그래서 반세기 동안 전 세계 75개국, 21개 언어로 3억 5천만 명에 달하는 독자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었고, 지금까지도 문화적 코드의 일부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한국판 <피너츠 완전판>은 판타그래픽스 출판사에서 출간된 원판의 내용을 충실하게 수록했다.
“바라건대 이 책이 여러분으로 하여금 삶을 더 순조롭게, 자기답게 살아갈 수 있게 도와주었으면 합니다. 이 책에 담긴 지혜 중 몇 가지는 제 삶의 중추였습니다. 생각보다 일찍 죽을 날을 받아 든 지난 몇 년간은 더욱 그러했지요. 여기가 모든 것이 끝나는 곳이 될 것입니다. 아니, 어쩌면 시작하는 곳이 될 수도 있고요” - 프롤로그 9쪽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책 제목만으로도 잠시 멈춰 고요함 속에서 생각하게 되는 책입니다. 1961년 스웨덴에서 태어나 대학 졸업 후 다국적 기업에서 근무하며 스물여섯 살에 임원으로 지명되었지만, 사직서를 내고 태국에서 파란 눈의 스님이 되어 17년간 수행하고 2018년 루게릭병을 진단받아 2022년 숨을 거둔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 작가의 이 책은 많은 독자에게 깊은 통찰과 위로를 준 베스트 셀러입니다. 삶의 폭풍우를 만난 순간에, 정답과 확신을 과도하게 강요받는 현대인에게 진심을 다하되, 집착하지 말고, 틀릴 수도 있음을 인정하라고 다독여 줍니다.
“여덟살 때였습니다. 할머니 댁에서 부엌 창문을 바라보던 저는 우뚝 멈추었습니다. 제 안에서 들끓던 온갖 소음이 순식간에 가라앉았습니다. 어디를 봐도 눈부시게 아름다웠습니다. 눈물이 고이고 가슴이 따뜻해졌습니다. 그것이 감사가 아니었을까 싶어요.” - 본문 15~16쪽
저자는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의식하며 살아가는 의식적 현존상태를 추구하라고 말해줍니다. 현재 하는 일에 온전히 집중하고 진실을 마주하는 태도를 중요하게 여기는 연습을 하다 보면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억지로 긍정적인 사고를 권장하며 일시적인 눈속임에 머무르려고 하지 말라고 전합니다.
삶에 잘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은 미래의 일에 덜 신경 쓰고 현재에 더 충실하며, 여유를 더해주는 한문장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라는 강력한 주문을 되뇌며 긴장을 풀고 가벼운 산책길 나서 보시기 바랍니다.
2022년 1월,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 ‘망설임도, 두려움도 없이 떠납니다’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거대한 애도의 물결이 스웨덴을 휩쓸었다.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 수많은 스웨덴인을 불안에서 끌어내어 평화와 고요로 이끌었던 그는 2018년 루게릭병에 진단받은 후에도 유쾌하고 따뜻한 지혜를 전했다.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는 20대에 눈부신 사회적 성공을 거뒀지만, 모든 것을 버리고 숲속으로 17년간 수행을 떠났던 저자의 여정과 깨달음, 그리고 마지막을 담은 책으로 세대를 불문하고 독자들에게 삶의 의미와 희망을 되찾게 하며 국내에서 베스트셀러의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 출판사 서평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