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에 영국의 위대한 소설가 서머싯 몸이 프랑스의 후기 인상파 화가 폴 고갱의 삶에서 영감을 얻어 <달과 6펜스>를 발표했다. 이 소설에 앞서 1915년에 <인간의 굴레>라는 자서전적 소설을 발표했지만 출간 당시에는 크게 인정받지 못하다가 <달과 6펜스>를 통해 작가적 지위를 얻었으며 <달과 6펜스> 이후로 그의 작품들이 재조명 받기 시작하였다.
<달과 6펜스>를 비롯해 그의 작품들이 세상에 나온 지 약10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고 있는 고전문학들로 손꼽힌다. 쉽고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서머싯 몸의 위트 넘치는 문체에 담긴 매력도 분명 대단하지만 무엇보다도 그의 작품들 속에 담겨있는 인간의 삶에 대한 깊은 통찰과 삶의 정수에 이끌려 그의 소설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계속 그의 소설을 찾기 때문이지 않을까 한다.
100년 전보다 세상은 부유해졌으며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많은 것들이 발전해왔지만,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한 현대 사회의 사람들은 삶의 진정한 가치와 행복을 자신의 눈과 주관으로 찾지 않고 남들과의 비교 우위를 통해 느끼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여기 <달과 6펜스> 속 주인공 찰스 스트릭랜드는 그런 현대인들에게 “너희들 나처럼 열정적으로 이상을 쫓아본적 있냐?”라며 물음을 던진다.
<달>과 <6펜스>는 둘 다 둥글고 하얗게 빛난다는 점에서 닮았다.
하지만 그 정체는 확연히 다르다. <달>은 인간이 그것의 존재를 인식하면서부터 관능과 광기, 감성의 상징이었으며 <6펜스>는 한 때 영국에서 통용되던 가장 작은 단위의 은화였다. <6펜스>는 지금이나 그 때나 사람들이 쉽게 훌쩍 떠나 버릴 수 없는 우리의 일상과 현실을 의미한다.
<달과 6펜스>는 <6펜스>의 남다를 것 없는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살다가 <달>의 관능과 광기의 삶으로 건너간 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이다.
영국의 증권브로커로 지극히 평범하게 가정을 이루며 살아가던 중년의 남자 찰스 스트릭랜드는 어느 날 갑자기 가족과 아무런 상의 없이 부인과 아이, 직장 등 모든 것을 버리고 프랑스로 떠나버린다.
자다가 벼락을 맞은 듯 엄청난 충격을 받은 부인은 남편의 외도를 의심하고 평소에 알고 지내던 극 중 화자에게 남편을 돌아오도록 설득해 달라고 부탁을 받는다.
화자는 파리에 어느 한 허름한 호텔에서 스트릭랜드를 만났지만, 소문과는 다르게 다른 여자의 흔적도 없었으며 남루한 옷차림과 화구 몇 가지만을 발견한다. 스트릭랜드와 대화를 나누고 절대 가족에게 돌아가지 않을 것이며 그림을 그리지 않고는 살 수 없다는 확고한 그의 의지를 영국으로 돌아와 부인에게 전한다.
너무나 평범한 삶을 살던 남편에게 그런 예술적 욕망이 있었음을 가족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그저 평범한 남편이자 아이의 아버지로 다시 돌아오길 바랄 뿐이다. 스트릭랜드는 이런 부인과 아이에게 어찌 보면 뻔뻔할 정도로 무심하고 무감각하다.
시간이 지나 스트릭랜드는 창작의 영감을 쫓아 파리를 떠나 타히티로 간다. 태초의 원시림이 살아 있는 섬의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그림에 더 몰두하지만, 나병에 걸려 시력도 점점 없어지고 손가락이 문드러지는 상황에서 원시적이고 불타는 광기가 담긴 생애의 마지막 그림을 그려나간다.
소설과는 다르게 우리의 현실은 세속적이며 스트릭랜드 처럼 모든 것을 버리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찾아 어디론가 훌쩍 떠나기가 쉽지 않지만, 가끔은 스트릭랜드의 예술가적 기질이 우리가 진짜로 원하는 삶의 즐거움에 다가갈 수 있게 하는 작은 원동력이 될 수 있지 않을까하는 마음에 이 한 귄의 책을 추천한다.
『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지 않소. 그리지 않고는 못 배기겠단 말이오. 물에 빠진 사람에게 헤엄을 잘 치고 못 치고가 문제겠소? 우선 헤어 나오는 게 중요하지. 그렇지 않으면 빠져 죽어요』
최은영 작가의 책은 관계의 책이다. <쇼코의 미소>가 타인과의 관계맺음, 타인을 이해하는 것에 대한 상처의 이야기라면 <내게 무해한 사람>은 그 관계의 끝, 상실의 이야기다. 부서질 듯 찬란했던 젊음이 소멸하듯 이유도 모른 채 사라져 가는,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사람들과의 끝에 관한 이야기다.
<그 여름>의 이경과 수이는 햇볕이 유난했던 그 여름, 열여덟 여름에 만난다. 레즈비언 커플이라는 편견 속에서도, 스무 살 봄에도 이경과 수이는 함께다. 레즈비언 카페에서 우연히 만난 은지와의 짧은 일 년간의 연애가 아니였다면 이경은 수이와 헤어지지 않았을까. 서른 넷의 늦은 봄, 돌아온 고향에서 이경은 열여덟의 수이를 만난다. ‘김이경’. 그렇게 자신을 부르고 어색하게 서 있던 수이, 그런 수이를 골똘히 바라보던 어린 자신을 만난다. 날개죽지가 길쭉한 회색 새 한 마리가 강물에 바짝 붙어 날아가고 있다. 이경은 그 새의 이름을 안다. 처음 만난 다리 위에서 수이가 가르쳐준 ‘왜가리’. 새 이름을 기억하듯이 이경은 수이를 통해, 그 관계의 기억을 통해 서른 넷 늦은 봄 강물처럼 천천히 흘러가는 인생을 알아간다. 너무 어려서 어설펐던 그래서 모든 것이 처음이었던 청춘, 그 시절 우리가 겪었던 관계의 끝에 대한 기억이 시리게 다가오는 단편이다.
<모래로 지은 집>은 천리안 동호회를 통해 만난 공무, 모래, 나비의 이야기다. 모래만의 중력으로 셋은 가까워지고 공무가 산 디지털 카메라에 스무살 셋의 이야기가 담겨진다. 나약하고 관계에 의지하는 모래에게 나비는 화가 나고, 불우한 가정환경으로 모래를 받아들일 수 없는 공무는 모래를 밀어낸다.
“나는 언제나 사람들이 내게 실망을 줬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보다 고통스러운 건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실망을 준 나 자신이었다. 나를 사랑할 준비가 된 사람조차 등을 돌리게 한 나의 메마름이었다. 사랑해. 나는 속삭였다. 사랑해, 모래야.”
서른 다섯이 된 나비는 어느 시점부터는 도무지 사람에게 다가갈 수 없이 맴돌기만 한다. 서로 상처를 주고받으면서 사랑할 수 있다는 것도, 완전함 때문이 아니라 불완전 때문에 서로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몸이 그렇게만 반응한다.
이 책은 나의 젊은 시절을 떠오르게 한다. 사람 때문에 휘청이고 맘 졸였던 숱한 경험들이, 그러했기에 무정하고 차갑고 방어적으로 벽을 쌓았던 지난날들이 가슴을 할퀴고 지나간다. 불완전한 사랑을 견딜 수 없었던, 사랑하지도 사랑받지도 못했던 자들을 위한 위로의 책이다. 또한 우리 곁의 편견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 이 책의 다른 단편 : <601,602> <지나가는 밤> <고백> <손길> <아치디에서>
제주 환상숲곶자왈공원에서 12년째 숲해설가로 활동중인 저자의 숲에세이이다. 곶자왈은 숲을 뜻하는 제주어‘곶’과 덤불을 뜻하는 ‘자왈’을 합쳐 만든 제주도 고유의 숲이다. 요즘은 제주도 여행을 가면 제주도의 특성을 품고 있는 곶자왈을 잊지 않고 방문하게 되지만 예전 가시덤불 숲은 사람들이 거들떠보지도 않고 피해 가던 버려진 땅이었다,
저자의 아버지는 젊은 날 빚을 지고 남들이 거들떠보지 않던 곶자왈을 사들였고, 40대 중반 뇌경색으로 몸의 한쪽이 마비가 되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을 때 환상숲 곶자왈에 길을 내며 건강을 회복하였다. 아버지를 살린 숲, 어릴 적 뒷마당으로 이용하던 숲에서 20대 젊은 나이에 숲해설사로 일하게 된 저자는 숲을 이해하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인생에 대해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한다.
이 책은 숲의 생명들을 통해 숲을 배우고, 그 숲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숲에서 찍은 사진과 숲 이야기, 사람들과 나눈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제주도 곶자왈 숲에 든 고요한 느낌이 든다. 또 가시덤불 속에서도 서로의 개성과 영역을 존중하며 조화롭게 살아가는 숲 이야기를 읽다 보면 숲 생명들의 지혜로움과 겸손함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저자는 사람이 숲을 필요로 하는 것이지, 숲은 사람을 꼭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는 숲에 들면 작은 풀잎, 나무의 움직임에 집중하게 되고 편안해진다. 그래서 ‘숲스럽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자연스럽고 열린 상태를 말하는 것이리라. 그리고 한없이 내어주는 숲을 보며 자연에 기대어 사는 사람이 숲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숲을 사랑하는 저자는 제주 곶자왈이 잘 보존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아버지와 주변 생태 조사를 나가며 곶자왈의 중요성을 알리는 역할도 하고 있다.
“숲은 자연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도로 양옆 가로수에 깃들어 있을 수도, 아파트 옥상 작은 화단에 있을 수도 있다. 우리 주변에도 분명 숲이 있고 우리는 그 숲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
일상에 지쳐있거나, 잠시 나를 위한 시간이 허락된다면 가까운 숲에 들어 숲 생명들의 지혜와 생명력을 느껴보길 바란다. 숲에서 만난 인연들, 자연에서 느끼는 시간과 계절의 흐름, 숲의 변화를 통해 숲의 소중함과 가치를 알리고자 하는 저자의 바램처럼 ‘숲스러운’사람으로 가까이 있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누릴 수 있음에 감사하며 오늘을 누리고 지혜롭게 살아가기를 바란다. 또한 우리가 그 숲 안에서 살고 있음을 잊지 않기를...
종종 손을 꼭 잡고 도서관 나들이를 온 엄마와 아이를 본다. 품에 안겨 도란도란 책을 읽기도 하고, 원화 전시를 보며 다정히 이야기를 나누거나 그림책을 한아름 안고, 의기양양하게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와 흐뭇한 엄마의 모습. 장난꾸러기 아들을 둔 워킹맘으로 부럽고, 사서라는 직업인으로서 보람찬 순간이다.
도서관에서 일하는 엄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내 아이와 도서관에 가기가 쉽지 않다. 누구보다 책의 이로움을 잘 알지만 ‘육아’에 독서를 녹여내기란 쉽지 않음을 깨닫고 이 책을 골라들었다.
‘나는 매일 도서관에 가는 엄마입니다’교육 관련 기자생활을 했던 저자가 두 아이를 키우며 도서관을 통해 엄마와 아이가 모두 성장하는 경험담과 노하우를 담아낸 책이다. 책 육아는 이렇게 하세요가 아니라 이럴땐 도서관에서 해답을 찾으세요 라고 저자는 말한다. 불안하고 미숙했던 엄마가 무너졌던 자아를 되찾고 아이의 인생에 가장 필요한 것을 가르치는 곳이 도서관이었다는 고백에 깊이 공감했다. 출판사 책 소개의 한구절이 마음에 닿는다.
하지만 책은 다르다. ‘이게 정답’이라고 말하는 대신 다양한 선택지를 들고 우리를 기다린다. 저자 이혜진이 누구나 쉽게, 언제든 찾을 수 있는 육아 상담소로 도서관을 추천하는 이유다. “누군가가 아이들에게 엄마로서 무엇을 가르치겠냐고 묻는다면 좋은 책을 고르는 눈과 책 속에서 자유롭게 상상하고 즐기는 자세, 무엇보다 책을 곁에 두는 습관을 가르치겠다고 답하겠어요”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 출판사 책 소개 -
아이를 사랑한다고 해서 내 아이의 인생을 대신 살아 줄 수도, 하물며 언제까지 옆에서 옳은 길을 알려줄 수 도 없음을 안다. 이 책을 통해 앞으로의 멀고 큰 인생에서 내 아이가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지금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책을 사랑하고 도서관을 가까이 하도록 도와주는 것임을 다시금 깨닫는다.
저자의 다른 책「나는 매일 책 읽어주는 엄마입니다」2020, 로그인 에서는 상황별 책 큐레이션과 읽어주는 방법 등을 다루고 있어 함께 추천한다. 또한 작가 이혜진은 다양한 도서관에서 저자 강연회를 통해 책 육아와 도서관 사용법에 대해 강의를 하고 있으니 참고하면 좋겠다. 오는 주말에는 내 아이 손을 잡고 도서관에 책을 읽으러 가야겠다.
책을 읽지 않는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수백, 수천권의 책이 아니라 다정한 목소리로 함께 책을 읽는 부모다. 아이에게 젓가락질을 가르칠 때처럼, 아이가 책에 재미를 느낄 수 있을 때까지 부모는 친절하고 모범적인 안내자가 되어 주어야 한다.
부모가 보여주는 삶의 방식은 자녀에게 그대로 유전된다. 엄마 아빠가 바쁜 와중에도 잠깐씩 시간을 내어 읽어준 책, 주말을 이용해 온 가족이 손을 잡고 찾아갔던 그림책 전시회, 크리스마스를 기념해 다 같이 관람한 인형극, 꾸준히 책을 읽고 예술을 접하는 부모의 모습은 아이들에게 소중한 추억이자 평생 간직하고픈 ‘인생 경험’이 될 것이다. -62~63쪽
아처(The archer)는 전 세계 3억 2천만 독자의 마음을 움직인 <연금술사> 작가 파울로 코엘료의 2021년 작품이다.
“무언가를 멀리 쏘아 보내는 동작은 역설적이게도 궁사 자신에게 돌아와 자아를 마주하게 된다” “활쏘기로 최고의 경지에 오른 이방인이 어느 날 전설적인 명궁 ‘진’을 찾아온다. 이름 없는 목수로 살아가던 진은 그의 도전을 받아들이고, 대결을 통해 그에게 기술보다 중요한 가르침을 전한다.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던 어린 소년은 궁도를 가르쳐달라 청하며, 진에게 최고의 자리에서 활을 내려놓고 목수가 된 이유를 묻는다. 소년의 인생에 빛이 되어줄, 열세가지 주제 속에 담긴 하나의 진리” “시처럼 풍부한 은유 속에 녹아든 우아하고 의미 있는 삶을 위한 마음가짐” “최고의 자리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영혼의 평정에 이르는 소중한 삶의 지혜” -책 표지 발췌-
프롤로그, 동료, 활, 화살, 표적, 자세, 화살을 잡는 법, 활을 잡는 법, 활시위를 당기는 법, 표적을 보는 법, 발시의 순간, 반복, 날아가는 화살을 주시하는 법, 활과 화살과 표적이 없는 궁사, 에필로그 등 활쏘기의 각 단계별로 목차가 구성되어 있으며 최고의 자리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영혼의 평정에 이르고, 마침내 우아하고 현명하게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마음수련법’을 발견할 수 있다.
“동작은 동사動詞가 형태를 갖춘 것이다. 다시 말해, 행동은 겉으로 표현된 생각이다. 사소한 동작이 자신을 드러내므로, 모든 것을 가다듬고 세심한 부분가지 고려하고 직관이 될 때까지 기술을 연마해야한다. 직관은 틀에 박힌 과정과는 전혀 관련이 없고 기술을 초월한 정신 상태에 관한 것이다. 그러므로 많은 연습을 거치고 나면 필요한 동작은 하나하나 생각하지 않아도 동작은 우리 존재의 일부가 된다. 하지만 이런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연습과 반복이 필수다. 충분하지 않다고 느껴지면 언제든 또다시 반복하고 연습해라.”
-본문 111p 발췌-
파울로 코엘료 <연금술사>를 감명 깊게 읽었기에 작가에 대한 믿음으로 <아처>를 소개한다. 위 발췌글은 책에 대한 압축적 설명이 잘 나와 있고 독자의 관심을 끌기에 인용하였다. 책이 두껍지 않고 글이 길지 않아 독서가 유독 힘든 분에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유튜브 알고리즘에서 잠시 벗어나 있고 싶은 분에게 읽어보시길 추천 드린다. 당장 내일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더라도 하루하루 나의 삶을 사랑하고 가족과 주변 지인들에게 친절을 베풀며 즐겁게 살고 싶다. 궁사가 수련하는 마음으로 매일매일 활을 쏘듯 나에게 주어진 일을 최선을 다해 이루는 게 좋은 마음가짐이자, 지혜롭게 인생을 살아가는 비결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제목 때문에 달달한 로맨스 소설로 생각하는 독자들도 있겠지만 <너무 한낮의 연애>는 김금희 작가의 두 번째 소설집으로 9개의 단편이 실려 있다. 올해의 책으로 <복자에게>가 선정되면서 작가 강연을 앞두고 김금희 작가에 대해 더 알고 싶다는 호기심 반 의무 반으로 선정한 책.
<너무 한낮의 연애>는 회사에서 인사이동 통보를 받은 필용의 대학시절 추억에서 시작된 이야기이다. 사랑고백은 양희가 했지만 어느새 주객이 전도 되어버린 관계. 지금은 사랑하지만 내일은 또 어떨지 모른다는 심드렁하고 밋밋한 고백은 ‘한낮’에 느끼는 나른함처럼 이것도 저것도 아닌 상태이다. 결국 아주 뻥 뚫린 것처럼 사라져버린 사랑… 과연 한낮의 연애란 어떤 걸까?
다음으로 회사 내의 녹록지 않은 생존문제를 배경으로 한 <조중균의 세계>. 회사에서 유령 같은 존재인 조중균씨. 그는 돈을 아끼려 회사에서 점심을 먹지 않고, 원고 교정 기한을 지키지 않아 회사에서 결국 잘리고 만다. 조중균씨가 사라지자 그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 그곳에는 더 이상 복수를 잊어버린 조중균씨도 없고 빈 시험지에 자신의 이름을 적는 조중균씨도 없었다. 나태한 조중균씨도 없고 내 사인이 적힌 수첩도 다행히, 아주 다행이 없었다. 문장과 시와 드라마는 있지만 이름은 없는 세계, 내가 간신히 기억하는 한, 그것이 바로 조중균씨의 세계였다.(p71)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적당함을 모르는 모습이 짠하면서도 어쩌면 적당함을 버리는 게 ‘자기만의 세계’를 지키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 내의 씁쓸한 인간 군상을 보여주는 소설.
“누군가 찾아오면 내가 죽었다고 말해달라고 단짝에게 부탁했다. 어떻게 그래, 멀쩡하게 살아 있는 사람을. 그러면서도 단짝은 어떻게 죽었다고 말해야 하나 고민하기 시작했다. 단짝은 나의 사인 死因에 골몰한 나머지 몇 날 며칠을 죽음만 생각하며 보냈다. 그리고 방학이 시작될 즈음 내게 언제가 가장 행복하니, 물었다. 노래를 부를 때, 라고 대답했다. 그러면 노래하다가 죽었다고 할게,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럴 때 죽으면 가장 불쌍하거든. 좋은 생각이지만 왜 불쌍하게 죽어야 하는데? 단짝은 깜짝 놀랐다. 당연히 불쌍하게 죽어야 하는 것 아니야? 사람이 불쌍하지 않게 죽을 수 있다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어.” (p.106) <반월>은 배경이 섬인 것이나 주인공의 직업, 편지를 쓴다는 것까지 <복자에게>와 매우 닮았다는 생각을 하며 읽었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섬에서 지내는 이모 집으로 떠나게 된 나의 이야기.
<고기>를 읽으면서는 김금희 작가가 스릴러나 추리소설을 한번 써 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끝까지 마음을 조마조마하면서 읽었는데 곧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소설의 분위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마트에서 구입한 고기에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된 그녀는 관련 기관에 신고한다. 선처해달라는 남자의 간절한 요청에도 신고를 철회하지 않고 마트 직원은 계속 그녀를 찾아온다. 한편,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상황 때문에 남편이 무슨 일을 하고 다니는지 궁금하지만, 짐작만 할 뿐이다. 어느 날 수영장에 간 아이가 보이지 않고 남편이 가져온 자루에서 핏물이 배어 나온다. 과연 주인공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책을 읽고 나니 새삼 작가라는 직업이 대단하다 생각된다. 책 한 권이 나오기까지 그 수고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 같다. 작가가 모든 직업을 다 경험할 수는 없으니 쓰면서도 자료를 수집하고 검토하고 고치기를 반복하며 소설 속의 오류를 줄여나간다는 작가의 말이 떠오른다. 나 또한 작가의 노력이 담긴 책들을 고르고 골라 올해의 책으로 선정하기까지 약 4개월을 보내고 나니 한 권의 책일지라도 소중하게 느껴진다. 독서인구가 줄어든다거나 종이책은 없어질 것이라는 이야기가 계속되지만 독서야말로 작가와 독자의 수고로움이 담긴 정수가 아닐까 싶다. 그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독서, 올해의 책과 함께 시작해보길 권한다.
<너무 한낮의 연애> 속 다른 단편들도 저마다의 이야기를 가지고 독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단편집은 소설이 끝난 듯 끝난 것 같지 않아 독자들로 하여금 상상의 나래를 펴게 하지만 소설의 길이가 짧은 만큼 결말이 좀 더 그려졌으면 하는 아쉬움을 감출 수 없다. 아홉 편의 단편이 아쉽다면 김금희 작가의 다른 소설 읽기를 추천해본다.
수년 전, 한 유명 연예인이 취미가 등산이라고 소개하면서 젊은 사람들이 우르르 산으로 몰려갔던 적이 있었다. 그 사이에 나도 껴서 북한산을 줄 서서 등산했던 기억이 난다. 너무 많은 인파가 산을 올라 나무 하나 산바람 하나 제대로 느낄 여유도 없이, 땅만 바라보며 잘 깎여진 계단을 오르고 오르다 포기하고 하산하였고, 그 이후로 나는 산을 찾지 않았다. 자연을 잊고 살던 어느날 집과 회사만 오가는 삶의 패턴 속에서 문득 ‘숲’이라는 청량함을 끼워 넣고 싶었다. 하지만 산을 찾아갈 시간적 여유와 체력은 없었다. 그 와중에 ‘숲의 즐거움’이라는 책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책을 읽고 나니 굳이 등산(登山)을 할 필요가 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유산(遊山)을 하면 된다는 작가의 글을 읽고 숲을 마주할 용기가 생겼다. 산(山) 만이 숲은 아니다. 숲은 ‘수풀’이라는 단어에서 왔으며 군집 생활을 하는 키 큰 나무와 작은 동물, 새와 같은 생명체와 균류 등 다(多)세계의 총합이며 숲 속 주체들이 각자의 삶을 공생의 문법 속에서 살아가는 커뮤니티다.
나는 왜 이렇게 숲을 갈망했던 것일까? 책을 통해 해답을 얻을 수 있었다. 숲은 사회적 시간과 잠시 결별시켜주는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의무와 관계, 소속 단체와 지위. 이 모든 것에서 잠시 해방되어 다른 시간을 향유 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오직 인간만이 생존 활동상의 부담을 면제 받는 시간을 가지는데, 그 시간은 바로 지나치게 긴 피양육 기간, 즉 어린 시절이라고 한다. 이 시간 동안 어린이는 세계에서 마음껏 개방된 채로, 생존의 압박에서 자유로운 채로 지각 세계를 구축한다. 숲길을 산책하면 개방성이라는 자신의 본질에 한 걸음 다가가게 된다. 숲을 통해 느끼는 해방감은 그 시절 자유로움과 일치되기 때문 아닐까.
사실 숲이 정신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신체적으로 치유의 효과가 있다는 과학적인 근거를 책에서 알려준다. 숲의 녹색은 평온함과 집중력을 키워주고 숲의 소리는 1/f 리듬으로 부교감신경이 활성화되어 뇌에서 알파파가 증가하며 숲의 향기는 면역계를 강화하고 혈압을 진정시키는 등의 효과가 있다. 숲은 자활, 자가 치유의 장소로도 볼 수 있다.
최근 미국 하버드대 심리학과 연구팀에서는 운동하고 있다는 상상만 해도 살이 빠진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처럼 생각과 상상이 주는 힘은 뇌와 신체에 경이로운 영향을 줄 수 있는데, 이 책은 읽는 내내 녹음 짙은 숲을 떠올릴 수 있으며 다각적인 측면에서 숲을 깊이 있게 사유하고 마음을 고요하게 들여다볼 수 있게 해준다.
자, 지금부터 상상해보자. 바람에 흔들리며 사락사락 소리 내는 아름드리나무들이 짙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고, 한 사람 정도만 겨우 지나갈 정도로 조붓하며, 구불구불하고, 포장도 되어 있지 않은 산의 흙길.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은 시원한 숲 냄새. 좌우로 호위병 같은 나무들이 줄느런히 서 있으며 촘촘한 숲 지붕 잎들 사이사이로 색칠된 푸른 하늘.
숲을 걷는 것은 나만의 소박한 순례와도 같다.
벌써 여름이 오고 올 해도 중반이 지나가는 지금, 처음 세웠던 주옥같은 계획들도 하나둘씩 유야무야 지나가고 올해는 꼭 나의 해로 만들겠다는 각오는 현실에 치여 너덜너덜한 휴지조각이 되어 버리지 않았을까. 이렇게 월화수목금-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생활에 지쳐간 사람들을 위해 추천하고 싶은 게 바로 <괜찮은 척은 그만두겠습니다>라는 책이다.
<괜찮은 척은 그만두겠습니다>라는 책은 네이버 포스트 '그러니까, 나는'의 저자가 사회생활을 시작한 후 깨지고 다시 일어서는 순간들을 담담한게 엮어낸 에세이이다.
총 4개의 파트로 이루어져 있으면 현재, 자신, 실패 그리고 안녕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엮어 각각의 주제와 관련된 저자의 경험들을 하나씩 꺼내놓으면서 그 때의 느낌이나 생각들을 짧은 문장으로 풀어낸다. 에피소드 형식들로 이루어져 일어 일상의 틈에서도 잠깐씩 펼치고 덮을 수 있는, 책을 위한 시간을 내야 하는 부담이 없다.
이 책에서는 함부로 독자에게 "괜찮아요, 힘을 내요!"라는 그런 뻔하고 뻔한 식상한 위로를 직접적으로 건네지 않는다. 자신이 힘든 상황에서 함부로 건네는 깊이 없는 말들은 들리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당신이 뭘 안다고 이렇게 쉽게 얘기하는거야'라는 반감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에 독자의 마음을 생각한 저자의 배려가 아니었을까. 대신 저자가 책 속에 우리 모두가 겪을법한, 그리고 자신도 겪었던 일들을 고백하면 독자들은 어느새 이런 생각을 하게 마련이다.
'나만 이런 줄 알았는데...누가 내 이야기를 여기에 적은거야'
'모두들 그렇게 살아'라는 감정없는 말보다 저자의 얘기를 들으면서 '나와 다를 바 없군'이라는 스스로의 위안을 찾아가는 책. 독자들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되짚어보면서 저자의 생각에 공감하며 이와 동시에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위로를 받을 수도 있고, 상황에 갇혀서, 혹은 그 당시 감정에 휩싸여서 보지 못했던 또 다른 이면을 들여다보는 새로운 시각을 얻을 수도 있다. 글과 글 중간에 적어놓은 문구들은 독자들의 생각을 심화시키면서도 동시에 그 생각의 끝맺음을 주는 시간을 준다.
<괜찮은 척은 그만두겠습니다>는 물론 가족, 친구, 회사 등 나를 힘들게 하는 주변의 모든 것에 대한 반항 섞인 말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스스로에 대한 다짐이라고도 볼 수 있다.
독자들은 자신을 힘들게 하는 건 바로 그 상황 속에서 스스로를 극한으로 밀어붙이는 자신이라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온전한 모습으로 만들 수 있는 것 역시 자신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낄 것이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나를 감싸고 있는 감정을 온전히 마주하고 솔직한 모습으로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사실 나는 안녕하고 그 누구보다도 잘하고 있는데, 나에게 너무 가혹하게 구는 건 내 자신이 아닐까’
나에게 '열심히'라는 채찍질도, '잘할 수 있어'라는 응원의 말도 다 뒤로하고 딱 이렇게 해보는 것만으로도 오늘의 나에게 충분하다. ‘오늘만큼은 괜찮은 척하지 말자'
가끔 서울 나들이를 할 때면 서촌에 있는 ‘라 카페 갤러리’를 즐겨 찾는다. 이곳은 박노해 시인이 생명·평화·나눔의 세계를 열어가고자 설립한 비영리 사회단체 '나눔문화'의 카페이자 갤러리다. 어여쁜 제철 꽃이 반기는 현관과 깊은 초록빛 실내가 마음에 쏙 드는 데다 갤러리에서 시인의 사진전을 감상하노라면 영혼이 말갛게 씻기는 느낌을 받아서 더 그런 듯싶다.
시인이 스물일곱 노동자로 쓴 시집 <노동의 새벽>은 비참한 노동 현실을 노동자의 목소리로 담은 80년대 민중문학의 최고봉이었다. 어느덧 출간 40주년을 맞아 미국 하와이대출판부에서 영문판으로 출간됐다는 기사를 접하니 귀한 작품은 세월과 국경을 넘는구나 싶다.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너의 하늘을 보아> 등 많은 작품으로 감동을 주는 시인이지만 그의 삶은 더 특별하다. 엄혹했던 독재 시절에 살아있는 시로 시대와 영혼을 뒤흔든 시인이었고, 노동운동가이자 민주화 투사로 사형을 구형받았던 혁명가였다. 그리고 지금은, 세상의 가난과 분쟁의 땅에서 생명 평화 활동을 펼치며 사진과 글로 진실을 전하고 있다.
한결같이 약자의 편에 함께 있는 그의 삶을 단단히 지키는 힘은 무엇일까. 시인은 “눈물꽃 소년에서 시작되었다”고 답한다.
첫 자전 수필인 이 책은, 남도의 작은 마을에서 ‘평이’라고 불린 어린 날의 기억이 33편의 짧은 이야기에 담겼다. 맛깔난 남도 사투리와 시인의 연필그림이 있어 쉬이 읽힌다. 사람과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어린 시절에 만난 가족, 스승, 친구, 이웃과의 관계에 기대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인들 그러고 싶어서 그리했겄는가. 누구도 탓허지 말고 자중자애허소. 한 많은 세상 한 많은 사람들 모다 품고, 악한 것 못 들게 선한 맘 북돋아 가그라”
시인의 할머니는 죄를 지은 동네 청년이 멍석말이를 당해도 아침마다 청년을 위해서 장독대에 정안수를 떠 놓고 비는 분이었다. 죄를 너머 인간의 선함을 보고, 가족을 너머 이웃을 위해 기도하는 할머니의 사랑은 청년에게 다시 살아갈 힘을 주었고 어린 시인의 기억에 아로새겨진다.
일곱 살에 아버지를 여읜 평이에게 ‘동네 한 바퀴’를 돌게 하며 씩씩하게 나아가게 한 지혜로운 이웃 어른들과 부당한 일에 “아닌 건 아닌디요” 함께 맞서며 같이 울어주던 동무들이 있었다. “더 좋은 거 찾으면 날 가르쳐 주소잉” 늘 몸을 기울여 학생들의 말을 들어주던 ‘수그리’ 선생님, 말이 아닌 삶으로 가르치며 잠든 머리맡에서 눈물의 기도를 바치던 어머니의 기억.
시인의 어린 시절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내게로 생각이 머문다. 나는 어떤 어린 시절을 보냈고 어떤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지, 내 삶을 지탱해주는 힘은 무엇인지,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동양고전의 글처럼 간결하고 깊이가 있는 시인의 글은 ‘걷는 독서’라는 제목으로 SNS에서도 만날 수 있다. “살아있는 한 희망은 끝나지 않았고 희망이 있는 한 삶은 끝나지 않는다.” “단순하게. 단단하게. 단아하게.” 한 줄 글을 읽고 생각하다 보면 흐트러진 마음이 정돈되고, 어떤 별을 바라보며 삶의 길을 걸어야 할지 길잡이가 되어주곤 한다.
‘다 때려치우고 시골 가서 농사나 지으면서 살고 싶다.’ 팍팍한 도시에서 일과 사람에 치일 때면 누구든 한 번쯤 중얼거려 보았을 법한 말이다. 슬쩍 ‘귀농 귀촌’ ‘시골살이’ 키워드들을 검색창에 두드려 넣어 보며 마음은 벌써 시골집 대청마루에 누운 듯 푸근해지지만, 그도 잠시뿐. 집 살 돈은? 직장을 그만두면 생활비는? 도시의 가족, 친구들은? 잠깐만 생각해도 떠오르는 수많은 난관에 부딪혀 결국 ‘언젠가는…’이라는 기약 없는 다짐만 되뇌곤 하는 것이다.
“언젠가는 시골집에서 살아볼 거야’에서 ‘언젠가’를 빼버리기로 했다.” 이 책의 저자는 미루지 않고 과감히 시골에서의 삶에 도전한다. 단, 평일은 여전히 도시의 직장인으로 살아가며, 금요일 저녁부터 주말 이틀간의 시골살이를 병행하는 것이다. 책 <금요일엔 시골집으로 퇴근합니다>의 저자 김미리는 직장 생활 10년 차에 번 아웃에 빠져 방황하다 어느 순간 시골 폐가를 덜컥 사버리고, 5도 2촌(주 5일은 도시, 2일은 시골)이라는 새로운 방식의 생활을 시작한다.
이 책은 봄, 여름, 가을, 겨울 4부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는 경기, 강원 각지로 발품을 판 끝에 전북에 거의 맞닿은 충남 어느 마을의 ‘폐가’ ‘귀신의 집’으로 불렸던 시골집을 사들여 ‘수풀집’이라는 이름을 지어 준다. 목조 한옥의 기둥과 서까래를 손보고 깨진 마루를 보수하고, 마당에 자갈을 깔고 잔디를 심고, 화단에는 꽃을 심고 텃밭에는 채소를 가꾼다. 시간이 흐르며 시골집이 온전한 ‘내 공간’이 되어가는 모습과 함께, 계절마다 달라지는 시골의 풍경, 바람과 온도도 이 책에 그대로 담겼다.
저자는 결코 장밋빛 로망만을 늘어놓지는 않는다. 집값 부담에 밀려 도시에서는 점점 멀어지는데 집 고치는 비용은 점점 불어나는 골치 아픈 돈 문제, 불쑥불쑥 치고 들어오는 이웃들의 관심과 참견, 세찬 비에 무너져버린 담장과 흙탕물 바다가 된 주방, 겨울엔 춥고 벌레 먹기 쉬운 목조 한옥, 이런 시골살이의 현실적인 고충도 담담하고 솔직하게 담았다.
패션 MD로 10년 가까이 일했던 저자는 시골살이를 시작한 지 딱 1년이 되던 때 유명 인테리어/리빙 앱 <오늘*집>의 이커머스 MD로 이직하게 된 사연도 이 책에서 털어놓는다. 시골집 고쳐 살기라는 도전에서 얻은 용기, 그리고 그 공간을 일구고 가꾸었던 경험과 그에 깃든 애정이 개인의 생활에서 직업적 커리어까지 확장되어 새로운 분야로도 연을 이어주었으리라는 짐작이 든다.
시골살이를 뚜렷하게 계획하는 이에게는 이 책이 제법 유용한 지침서가 될 것이고, 시골이 과연 나에게 맞을지 아직 고민하는 이에게는 현실적인 충고가 될 것이다. 시골로 직접 달려가지 않고 그저 이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힐링과 대리 만족감을 얻을 수도 있다.
“누군가는 이렇게 사는 것을 멋지다고 하고, 누군가는 헛되다고 한다. 전에는 그런 말에 마음의 평온이 쉽게 깨어지곤 했다. 그러나 지금은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멋질 수도 헛될 수도 있지만, 나는 지금 여기서 행복하다고. 그리고 내일이, 다음 계절이 무척이나 기대된다고.” (책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