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도 더 된 등산 가방을 ○○마켓에 올려두고 연달아오는 메시지에 답하느라 정신이 없는 남편에게 “그냥 버리면 되지, 귀찮게 뭣하러” 하고 쏘아붙였다. 고가의 물건도 아니고, 중고마켓에서 엄청난 수익을 버는 것도 아닌데.
남편이 답한다. “이 가방 메고 내가 등산 취미 시작했잖아. 나한테는 소중한 가방인데, 잘 쓰겠다는 사람한테 줘야 오랫동안 쓰이지.”
애정 담뿍 담긴 눈으로 가방을 바라보는 남편을 보며 분리배출 제대로 안 한다고 환경보호 일장 연설을 했던 내가 부끄러워져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꺼내 들은 책이 <핀란드 사람들은 왜 중고가게에 갈까?>이다.
저자는 핀란드에서 가구디자인 전공을 거쳐 제품디자인회사를 운영하며 가구를 만들고 납품하면서도 늘 ‘세상에 이렇게 많은 물건이 존재하는데 더 만드는 것에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환경 문제를 체감하는 현재에 소비와 생산은 무슨 의미인가?’ 자문했다. 기후변화를 연구한 것도, 재활용과 재사용에 관한 지식이 풍부한 것도 아닌 지구에서 인간과 함께 살고 있는 동식물들과 이 모든 짐을 짊어지게 될 다음 세대에게 미안함을 느끼는 보통 사람인 그는 핀란드의 조용한 도시에서 일상처럼 자리 잡은 중고가게 문화를 탐색하며 건강한 소비, 환경을 생각하는 소비의 답안을 찾는다.
‘재활용만 할 수 있다면 환경에 부담 없겠지’하고 생각해 오던 나는 책을 통해 재처리 과정에 높은 수준의 기술력뿐만 아니라 원료, 에너지가 과하게 필요하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이와 달리 재사용은 특별히 다른 가공 과정을 거치치 않고 물건을 있는 그대로 사용하거나 간단한 수리를 거쳐 사용하는 것인데, “중고 문화는 이 재사용 문화의 중심에 있다. 개인이 중고 문화에 참여함으로써 소비자가 물건의 수명을 늘이는 주체가되어 선형 경제에서 순환 경제로 그 모양새를 변형시키는 힘을 갖게 되는 것이다.” -51p.(중고가게의 도시 헬싱키)
핀란드의 중고 문화는 비단 환경을 생각한 소비 문화일뿐만 아니라 야외 벼룩시장에서 소풍하듯 즐기는 가족문화이자, 브랜드가치를 높이는 마케팅정책이며 공유경제의 시작, 주체적 시민참여로 만들어지는 시민 행사이다. 집집마다 늘어선 아름드리 나무들 밑에 집 마당을 활짝 열어놓고 저마다의 추억이 겹겹이 껴있는 알록달록한 물건들을 늘어놓은 채 이웃들과 이야기 나누는 따뜻한 여름날의 풍경은 언제가 꼭 가고 싶은 나라로 핀란드를 꼽을 만큼 기억에 남는다.
한 권의 책으로 환경에 대한 부채감으로 시작한 질문에는 당장 답할 수는 없지만 핀란드의 중고 문화는 우리가 고민하고 나아가야 할 방향키를 제시한다. 환경을 위한 소소한 일상 속 실천 방법이 궁금하다면 <바질 Basil> <오보이 OhBoy!> 매거진도 읽어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