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문장이 일렁일렁 춤을 추며 마음을 건드린다. 잘 맞춰진 하나의 문장이 가슴에 내려앉을 때마다 마음에 밑줄을 긋는다. 읽는 소설의 즐거움, 그 즐거움의 시간을 늘 내게 선물하는 작가, 김애란. <두근두근 내 인생>으로 처음 만난 작가는 내게 탐독의 폭풍을 선물하진 못했지만 늘 애써 꺼내보는 한 권의 책을 선물한다. 이번 소설은 유독 어딘가에 새겨질 문장을, 매우 좋은 마음을 나에게 줬다.
책을 관통하는 이야기는 ‘선의(善意)’에 관한, ‘어찌할 수 없는 내 안의 부끄러움’에 관한 것이다. 누군가에게 건네는 나의 선의가 진짜일까? 내세움의 또 다른 모습인가? 받아들이는 나의 마음은 진심인가? 작가의 전작 <이중 하나는 거짓말>처럼, 요즘 작가의 고민은 내면의 본질에 관한 탐구인가? 이 책은 ‘본질’에 대한 두 개의 감정을 두고 고민한 문장들로 가득하다.
“작가로서 당신이 누군가에게 뭔가 뺏고 싶다면 그에게 먼저 그걸 주어라.”(p.43)
“눈 깜짝할 사이 폭삭 늙어버린 엄마가 보낸 ‘고맙다’는 문자를 보자, 이상하게 그 말을 받은 게 아니라 언젠가 내가 상대에게 준 무언가를, 아니 오랜 시간 상대가 내게 주었다 생각한 무언가를 도로 빼앗은 기분이 들었다.”(p.86)
“그럼 정말 알아서 하든지 아님 그냥 고맙다고 하든지, 둘 중 하나만 하자.”(p.89)
“젊은 시절, 나는 ‘사람’을 지키고 싶었는데 요즘은 자꾸 ‘재산’을 지키고 싶어집니다.”(p.141)
단편 <홈 파티>는 선의를 건네는 자들의 알량함을, <숲속 작은 집>은 그것의 허영심을, <좋은 이웃>은 선의를 잃어가는 자의 서글픔을, <이물감>은 선의를 잃었다 여기는 자의 구역질을 점진적으로 그려간다. 그 점진적인 과정을 따라가며 독자는 나의 마음이 어디쯤에 머물러 있는지, 나는 어떠했는지를 곰곰이 생각하며 얼굴이 붉어지는 어찌할 수 없는 부끄러움과 마주한다.
이후의 단편 <레몬 케이크>, <안녕이라 그랬어>, <빗방울처럼>에서는 그 어찌할 수 없는 부끄러움 속에서도 우리는 “큰 교훈 없는 상실. 삶은 그런 것의 연속이라고.”(p.246) 말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살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레몬 케이크>의 기진처럼 망해가는 서점을 부여잡은 인생임에도 샴페인의 병을 지금 딸지 말지 고민하고, <안녕이라 그랬어>의 나처럼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내 쪽에서 먼저 원곡 위에 ‘안녕’이란 한국어를 덧씌워 부른다고. 우리 삶에는 그렇게 틀린 방식으로 맞을 수밖에 없는 순간이 있고 아마 나는 그걸 네게서 배운 것 같다고.”(p.253) 말하면서 말이다. 툭툭- 낙수가 떨어지는 아파트에서 <빗방울처럼>의 지수가 들었던 “한국어가 모어가 아닌 이가 건넨 정중한 문장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p.293) 를 서로에게 건네면서, 그제야 지수처럼 “그동안 누군가로부터 그 말을 얼마나 듣고 싶어했는지 깨달(p.294)”으며 그렇게 살아가야 함을. 어리석은 나는 책을 덮으며 다시금 목도한다.
나는 어떤 이에게 ‘안녕이라 그랬어’말을 건넬 수 있을까? 건넬 수 있는 선의가 나에게 남아 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