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안중도서관 재개관식에서 이대한 교수님의 강연을 들었다. 교수님은 인간의 노화 정복이 머지않았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으며 나는 곧바로 야마다 무네키의 <백년법>을 떠올렸다. 이 책 속의 이야기가 더 이상 공상만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옛사람들은 불로장생의 비법을 찾아 헤맸다. 우리는 그것을 미신이나 욕심으로 치부했지만, 지금의 우리는 어떤가. 주름을 없애기 위해 시술을 받고, 흰머리를 감추기 위해 염색을 한다. 결국 불로장생의 욕망은 다른 형태로 여전히 살아 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늙고 싶지 않아 한다.
<백년법>에 등장하는 HAVI(human, antiaging virus ino culation) 시술은 그런 인간의 욕망을 과학이 실현한 결과물이다. 노화를 멈추는 기술이 개발되자 사람들은 별다른 망설임 없이 시술을 받는다. 그러나 영생의 대가는 무겁다. 인구가 폭발하고 일자리는 사라지며, 사회는 정체에 빠진다. 결국 국가는 백 년이 지나면 반드시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는 법, ‘백년법’을 제정한다. 흥미로운 건, 이 시술의 이름 HAVI가 영어 단어 heavy와 같은 발음이라는 점이다. 늙지 않는다는 선택은 결코 가벼운 결정이 아니다. 영생은 달콤한 선물이 아니라, 견디기 힘든 ‘무거운(heavy)’ 짐이다.
처음엔 정의롭다고 믿었던 제도는 곧 또 다른 폭력이 된다. 죽기 싫은 사람들은 도망치고, 그들은 자유를 얻는 대신 정신이 붕괴해 간다. 영생이 축복이 아니라 저주로 변해버리는 순간이다. 반대로 HAVI 시술을 거부하고 자연스럽게 늙어가는 사람들은 오히려 신비롭고 존경받는 존재로 여겨진다.
야마다 무네키는 묻는다. “영생은 정말 행복인가?” 이 질문은 단순한 SF적 상상력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근본적 물음이다. 우리가 늙고, 쇠하고, 언젠가 사라지기 때문에 ‘지금’의 삶이 소중하다는 것을 잊고 사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한다.
<백년법>은 과학의 발전이 가져올 유토피아 뒤에 숨은 그림자를 들춰낸다. 신이 우리에게 준 ‘노화’는 결코 결함이 아니라, 삶을 완성하는 세심한 장치다. 죽음이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
이 작품을 덮으며 나는 생각했다. 불로장생은 신의 영역이며, 인간은 그 문 앞에서 늘 유혹받는다. 그러나 결국 우리는 늙어가며 사는 법을 배워야 하는 존재다. 그것이야말로 신이 우리에게 허락한 가장 배려 깊은 선물일지도 모른다.
“생명에 대한 인간의 욕망이 어떤 현상을 불러일으킬지를 경고하는 듯한 작가의 통찰력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영원한 젊음’에 대한 일그러진 욕망을 빌미로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인 생존권을 저버려야 하는 현실, 사회지도층의 ‘타인에 대한 생명’에 대한 권한과 특혜 등에 대한 조명은 우리가 엄혹한 미래로 가는 길목에 서 있음을 빗대어 보여준다.또한 미래 사회를 구성하는 또 다른 축인, 불로불사의 삶이나 백년법을 거부하며 인류가 만들어낸 기형의 사회에 반기를 드는 이들을 통해 ‘인간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라는 해묵은 물음에 숨결을 불어 넣는다. ‘사는 것’이 죄가 되는 사회 현상에 저항하며 인간성의 회복을 외치는 이들의 목소리는 작지만 깊은 울림으로 와 닿는다.”
- 출판사 서평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