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과 죽음이 바로 눈앞에 놓인 49일의 시간 속에서, 안과 슌이 끝내 마주한 것은 어떤 거창한 해답이 아니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존재하지만 너무 일상적이어서 쉽게 말로 옮길 수 없는, 지극히 평범한 인생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가깝다.
<도롱뇽의 49재>는 이 조용한 깨달음을 통해, 우리가 당연하게 믿어 온 ‘독립’이라는 개념을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개인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내 몸과 내 감정을 스스로 통제하고 책임질 수 있어야 비로소 어른이 된다고 믿어 왔다. 그러나 아사히나 아키의 <도롱뇽의 49재>는 그 믿음이 얼마나 불완전한지, 조용하지만 깊은 방식으로 흔들며 이 소설은 완전한 독립이라는 관념이 실은 얼마나 취약한 환상인지를 묻는다.
주인공 ‘안’과 ‘슌’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쌍둥이보다 훨씬 더 밀접하게 얽혀 있다. 이성적이고 철학적인 안과 본능적이고 감정적인 슌은 끊임없이 충돌하지만, 작가는 두 사람의 시점을 교차시키며 그 경계를 의도적으로 흐린다.
독자는 어느 순간 누가 누구의 생각을 하고 있는지 분간하지 못하게 되는데, 이는 타인의 습관이 어느새 나의 일부가 되고, 타인의 상처가 나의 밤을 잠 못 들게 했던 우리의 경험을 떠올리게 한다.
이러한 의식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공간은 소설 속 큰아버지의 장례식이다. 제목이 암시하듯, 이 장면은 작품의 주제가 응축되어 드러나는 지점이다. 우리는 죽음을 끝이라 부르지만, 소설은 그것을 누군가의 삶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순환’으로 그린다.
큰아버지의 죽음은 안과 슌에게 소멸에 대한 공포를 안기지만, 동시에 자신들이 결코 고립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자각하게 하는 역설적인 안도감을 가져다준다.
‘도롱뇽’과 ‘음양어’의 이미지는 소설 속 가장 의미 있는 상징이다. 이 순환의 상징을 통해 완전히 나만의 것이라고 부를 수 있는 몸이나 기억이 과연 존재하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그 질문들 또한 역시 독립에 대한 강박을 풀어 주는 방향으로 작용하며 그동안의 피로는 ‘우리는 모두 얽혀 있다’라는 감각 속에서 연대와 치유의 정서로 전환된다.
서로의 삶 속에서 얽히고 스며드는 관계는 결국 삶의 무게를 나누는 일이 된다. <도롱뇽의 49재>는 이 피할 수 없는 과정을 거쳐서야 비로소 인간이 인간다워진다는 사실을, 고요한 언어로 드러낸다.
그 감각은 작품 속 언어를 통해 더욱 또렷해진다.
“오른손이 막대를 내던지고 주먹을 꽉 쥐었다. 가슴에 뭉클하고 뭔가가 밀려들어 와서, 나는 거기에 포개듯 왼손을 꽉 쥐었다. 그러자 가슴에서 하나가 되는 감각에 기쁨이 솟아올랐다. 가슴이 간질거려서 웃음이 나왔다. 두 숨이 포개지더니 가슴 속에서 목소리가 한데 울려 퍼지며 부풀어 올랐다.” 181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