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부터 시행되는 ‘돌봄통합지원법’은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살던 곳에서 계속해 건강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의료·요양 등 돌봄 지원을 지역사회에서 통합·연계해 제공받는 제도다. 내 집에서 죽는 게 조만간 가능해질지도 모르겠다.
당장 코앞에 죽음이 있는 사람들은 급하다. 화장실을 혼자 못 갈 정도로 일상을 타인에게 의존해야 한다면, 또는 말기암 등으로 언제 끝날지 모르는 극심한 고통을 겪는다면 결코 산다고 할 수 없는 이 고통의 세계를 어찌해야 할까.
시어머니는 8년간 요양병원에 계시다가 돌아가셨다. 걸어서 들어간 병원에서 결국 돌아가시기 몇 년간은 눈도 제대로 못 뜨고 침대에 누워만 계셨다. 여러 자식이 있고, 부모님 집도 버젓이 있는데 요양병원에서 낯선 이들 속에서 이렇게 마지막을 보낼 수밖에 없는 건지, 더 나은 대안을 찾아 관련 책들을 보며 한없이 우울했다. 인간답게 존엄을 지키는 노년의 삶과 죽음의 방법으로 외국의 선례를 도입하는 시스템의 개선은 너무 멀었기에 무기력했다.
이 책은 말기암으로 긴 투병 끝에 스위스 의사 조력 사망을 결심한 어머니가 아픈 몸으로 간신히 오랜 시간 비행기를 타며 죽음을 준비하고 실행하는 과정을 자세히 보여준다. 그 선택에 동행한 딸이자 작가는, 자신과 같은 환자들이 언젠가는 한국에서 죽음을 맞이하길 바라며 임종 순간까지 다큐멘터리를 촬영한 어머니를 기억하며 한국에 돌아와 어머니의 삶과 존엄사를 기록하며 ‘조력존엄사법’ 제정을 촉구하는 활동에 나선다.
현재 우리나라는 ‘연명의료결정법’을 시행하며 무의미한 연명 중단 자연사는 허용하지만, 환자가 죽음을 선택하는 조력 사망은 불법이다. 어쩔 수 없었던 이들의 선택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분명 많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조력 사망을 생명 경시로 치부하는 이들에게 환자 가족으로서 그 과정이 결코 ‘안락’하지 않으며, 그럼에도 조력 사망을 감행한 이유를 알려 그 선택의 무게와 필요성을 환기하고 싶다고 말한다. 한국인이 한국에서, 자기 집에서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둘러싸인 채 편안한 죽음을 맞이하는 일. 그것이 엄마의 뜻이었고 이제 딸인 자신이 이어 나갈 거라고.
책을 읽는 동안 자주 울컥했다. 내 부모 이야기이자 나의 일이기에. 언젠가는 나도 삶을 누군가에게 전적으로 의존하고 돌봄을 받게 되겠지. 그때 돌봄과 죽음의 장소가 내가 살고 있는 집이면 좋겠다. 지역사회가 돌봄을 받는 당사자인 내 목소리에 귀 기울여주고 호스피스, 그룹홈 등 선택할 수 있는 돌봄 시스템이 다양하며, 존엄한 죽음을 맞을 수 있으면 좋겠다.
<은중과 상연>은 스위스에서 조력 사망을 선택한 친구를 동행하는 드라마다. 다큐와 책으로도 조력 사망을 선택한 이야기가 나오는 걸 보면 이제는 죽음과 존엄에 대해 본격적인 다양한 의견을 나눌 때가 아닐까 싶다. 초고령화 사회에서 더는 미룰 수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