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는 돌봄의 시대이다. 아이부터 어른까지, 마을에서 지역사회로 돌봄은 사회 곳곳에서 이루어지고 그 영역과 대상은 계속 넓어지고 단단해지고 있다. 사회가 많은 역할을 담당하고 있지만 개인의 영역에서 돌봄의 숙제는 여전히 남는다.
<페퍼민트>의 백온유 작가는 ‘생애주기 속에서 대다수의 사람들이 통과하게 되는 간병의 가능성에 대해 우리는 대부분 회피한다’라고 이야기한다. 보호받아야 할 나이에 간병의 짐을 아빠와 나눠야 하는 주인공 시안의 이야기는 간병과 돌봄의 현실을 직면하게 한다. 도망도, 외면도 쉬운 일이 아니라 그저 닥친 엄마의 간병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시안. 열아홉 살 시안은 이렇게 자신을 다독인다.
“나는 엄마 덕분에 내가 안정적인 유년기를 보냈다고 생각한다. 엄마는 늘 나를 편안하고 자유롭게 해 주었다. 나는 고마움을 아는 사람이다. 보답을 할 줄 아는 사람이다. 나는 그렇게 나를 세뇌한다. ” - 본문 중 p.28-
갑자기 행방을 감춘 친구 해원이를 우연히 만나게 되면서 시안은 자신이 얼마나 세상에 낙오되어 있는지 새삼 느낀다. 책에서는 원망과 두려움과 불편함으로 뒤섞인 복잡한 감정들로 서로를 할퀴기도 하고 위로받기도 하는 시안과 해원의 감정이 놀랍도록 섬세하게 그려진다. 결국 해원에게 가장 큰 위협이 되는 자신을 스스로 멀리 떠나보내기로 하는 시안, 그렇게 아이들은 성장한다.
상쾌하고 알싸한 맛의 페퍼민트는 엄마를 돌봄과 동시에 시안에게도 평화와 쉼을 주는 차이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간병 생활에 점점 피폐해져가는 시안은 페퍼민트 차를 두고 간병인 최선희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따뜻한 위로를 받는다.
“너무 슬퍼하지 마. 모두 결국에는 누군가를 간병하게 돼. 한평생 혼자 살지 않는 이상, 결국 누구 한 명은 우리 손으로 돌보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야. 우리도 누군가의 간병을 받게 될 거야. 사람은 다 늙고, 늙으면 아프니까. 스스로 자기를 지키지 못하게 되니까.” -본문 중 p.192-
엄마를 요양병원으로 보내고 감옥에 간 아빠를 기다리는 ‘세상의 많은 시안’이 햇볕이 있는 곳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 ‘보통 사람들’의 진도에 맞춰 살아가기를 바란다. 또한 우리 모두가 한 번은 겪을 돌봄의 일상이 너무 지치고 힘들지 않도록 더불어 함께 하며 자신만의 ‘페퍼민트’를 찾아가기를...
“감염병을 겪으며 사람들은 우리 안에 도사리는 무수한 두려움을 공유했고, 서로를 염려하는 마음은 회복의 실마리가 되었다. 그 마음을 한 번 더 믿어 보고 싶다. 우리가 더 이상 피하지 않고 불안을 나눈다면 소중한 사람을 보호하면서 일상을 지속하는 삶과 소외되는 사람이 없는 세계를 이룩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므로 이 이야기가 상처와 고통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작은 희망에 대한 이야기로 읽히기를 바란다.” - 작가의 말 중에서
1953년, 우주개발이 아직 공상에 불과하던 시절. SF문학의 거장으로 불리는 아서 C. 클라크(1917~2008)는 인류의 진화와 우주의 거대한 지성에 대한 예리한 상상력을 소설 《유년기의 끝(Childhood’s End)》에 담았다. 스푸트니크 발사(1957) 전이었다는 점에서 느낀 충격과 작가에 대한 경외감은 시대적 맥락을 고려할수록 깊어진다.
당시 현실로는 상상조차 어려웠던 궤도 엘리베이터, 집단의식, 인공지능 등 미래 과학의 핵심 개념이 이 작품 안에서 자연스럽게 펼쳐진다. 과학적 사유를 바탕으로 우주를 예견한 작가의 시선은 70년이 지난 지금도 날카롭게 빛난다.
아서 C. 클라크는 통신 위성의 개념을 정립한 논문(1945)으로 유명하다. 이 공로로 지금도 지구 정지 궤도는 ‘클라크 궤도’라고 불릴 정도이다. 그는 우주에 대한 깊은 과학적 이해를 바탕으로 SF소설을 썼던 독보적인 인물이었다.
이야기는 거대한 우주선이 지구 상공에 나타나고, ‘오버로드’라 불리는 외계 지성이 인류 문명에 개입하면서 시작된다. 무력 대신 인류 스스로의 변화를 유도하며, ‘유년기’를 벗어나는 과정을 차분하고 웅장하게 그린다. 오버로드가 선사한 유토피아는 번영을 가져오지만 동시에 성장의 동력도 앗아간다. 소설은 인류의 진화와 소멸이라는 주제를 통해 인간 존재와 우주 속 위치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던진다.
클라크의 또 다른 대표작 《라마와의 랑데뷰》(1973)도 함께 읽어보길 권한다. 태양계에 나타난 거대한 외계 우주선을 탐사하는 이 작품은 미지에 대한 경외감과 탐험 정신을 생생하게 담고 있다. 두 작품을 나란히 읽는다면, 우주를 향한 인류의 상상력이 어떻게 확장되어 왔는지 한눈에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클라크가 평생토록 만나길 고대했던 외계지성과의 ‘최초의 접촉’을 그린 초기 대표작 《유년기의 끝》은 인류를 넘어선 존재, 지구를 넘어선 인간에 대한 클라크의 비전을 상징하는 아이콘 같은 작품으로 여전히 큰 사랑을 받고 있다. 게임 캐릭터로도 익숙한 ‘오버로드’, 20세기 말을 휩쓸었던 에바 열풍의 주인공 <신세기 에반게리온>에 등장하는 ‘인류보완계획’ 등도 바로 이 작품에서 빌려온 개념들이다.
작품 속에 담겨 있는 초고도의 지성을 가진 존재들의 시선을 통해 본 인류의 한계와, 이를 통해 인간이 스스로에게 품게 되는 질문들은 인간이 달에 착륙하기 무려 10여 년 전에 출간된 작품임에도 지금에도 여전히 유효하다.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새롭게 선보이는 특별판 《유년기의 끝》은 냉전 종식 후 새로운 세기에 대한 희망을 담아 개작한 (하지만 소련 붕괴 후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 1989년의 도입부와 반세기가 넘도록 사랑받은 자신의 대표작에 대한 클라크의 단상을 담은 2000년의 <서문>, 클라크의 가장 널리 알려진 팬인 작가 허지웅을 비롯, 탄생 100주년을 축하하는 한국 독자들의 애정 어린 축하 글들을 담아 더욱 의미 있는 판본으로 제작되었다.” - 출판사 서평-
얼마 전 안중도서관 재개관식에서 이대한 교수님의 강연을 들었다. 교수님은 인간의 노화 정복이 머지않았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으며 나는 곧바로 야마다 무네키의 <백년법>을 떠올렸다. 이 책 속의 이야기가 더 이상 공상만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옛사람들은 불로장생의 비법을 찾아 헤맸다. 우리는 그것을 미신이나 욕심으로 치부했지만, 지금의 우리는 어떤가. 주름을 없애기 위해 시술을 받고, 흰머리를 감추기 위해 염색을 한다. 결국 불로장생의 욕망은 다른 형태로 여전히 살아 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늙고 싶지 않아 한다.
<백년법>에 등장하는 HAVI(human, antiaging virus ino culation) 시술은 그런 인간의 욕망을 과학이 실현한 결과물이다. 노화를 멈추는 기술이 개발되자 사람들은 별다른 망설임 없이 시술을 받는다. 그러나 영생의 대가는 무겁다. 인구가 폭발하고 일자리는 사라지며, 사회는 정체에 빠진다. 결국 국가는 백 년이 지나면 반드시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는 법, ‘백년법’을 제정한다. 흥미로운 건, 이 시술의 이름 HAVI가 영어 단어 heavy와 같은 발음이라는 점이다. 늙지 않는다는 선택은 결코 가벼운 결정이 아니다. 영생은 달콤한 선물이 아니라, 견디기 힘든 ‘무거운(heavy)’ 짐이다.
처음엔 정의롭다고 믿었던 제도는 곧 또 다른 폭력이 된다. 죽기 싫은 사람들은 도망치고, 그들은 자유를 얻는 대신 정신이 붕괴해 간다. 영생이 축복이 아니라 저주로 변해버리는 순간이다. 반대로 HAVI 시술을 거부하고 자연스럽게 늙어가는 사람들은 오히려 신비롭고 존경받는 존재로 여겨진다.
야마다 무네키는 묻는다. “영생은 정말 행복인가?” 이 질문은 단순한 SF적 상상력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근본적 물음이다. 우리가 늙고, 쇠하고, 언젠가 사라지기 때문에 ‘지금’의 삶이 소중하다는 것을 잊고 사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한다.
<백년법>은 과학의 발전이 가져올 유토피아 뒤에 숨은 그림자를 들춰낸다. 신이 우리에게 준 ‘노화’는 결코 결함이 아니라, 삶을 완성하는 세심한 장치다. 죽음이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
이 작품을 덮으며 나는 생각했다. 불로장생은 신의 영역이며, 인간은 그 문 앞에서 늘 유혹받는다. 그러나 결국 우리는 늙어가며 사는 법을 배워야 하는 존재다. 그것이야말로 신이 우리에게 허락한 가장 배려 깊은 선물일지도 모른다.
“생명에 대한 인간의 욕망이 어떤 현상을 불러일으킬지를 경고하는 듯한 작가의 통찰력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영원한 젊음’에 대한 일그러진 욕망을 빌미로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인 생존권을 저버려야 하는 현실, 사회지도층의 ‘타인에 대한 생명’에 대한 권한과 특혜 등에 대한 조명은 우리가 엄혹한 미래로 가는 길목에 서 있음을 빗대어 보여준다.또한 미래 사회를 구성하는 또 다른 축인, 불로불사의 삶이나 백년법을 거부하며 인류가 만들어낸 기형의 사회에 반기를 드는 이들을 통해 ‘인간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라는 해묵은 물음에 숨결을 불어 넣는다. ‘사는 것’이 죄가 되는 사회 현상에 저항하며 인간성의 회복을 외치는 이들의 목소리는 작지만 깊은 울림으로 와 닿는다.”
스누피를 좋아하시나요? 빨간 지붕 집에서 살고, 노란 작은 새를 친구로 든 개입니다. 거의 D사의 M키가 세상에서 제일 유명하듯, 세계에서 제일 유명한 개일 것 같기도 하네요. 저는 스누피를 좋아합니다. 스누피 진짜 좋아한다고 말하며 신발, 티셔츠, 컵, 접시, 아기자기한 문구류를 그렇게 많이도 들였더랬었습니다. 여행지에서 일부러 스누피 카페를 찾아가기도 했습니다. 찰리브라운이나 스누피의 얼굴을 라떼 위에 그려주거든요. 좋아하는 도서 시리즈인 아무튼 시리즈에 누가 끼워준다고 하면 아무튼 스누피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정도로요.
그 생각은 아니 정확히 착각은 스누피 너무 좋아 노래를 부르며 제주도의 스누피 가든(피너츠 캐릭터를 기반으로 꾸며진 정원, 아무리 빨리 둘러봐도 2시간 이상 소요된다.)에 갔을 때 깨어지게 됩니다. 그곳의 전시물에서 내가 아는 스누피가 만화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아니, 만화 캐릭터라는 것은 알았지만 그것이 스트랩(신문에 연재되는 네컷만화)이라는 것은 모르는 척하고 있었나 봅니다.
그 수많은 캐릭터 상품을 탄생하게 하고, 모든 미국인을 열광하게 한 만화가 1950년부터 연재되었다는 사실도, 그 그림을 그린 만화가가 생각보다 수줍음이 많다는 것도, 그러나 시기가 시기이니만큼 전쟁에 참전한 경험이 있다는 것도 말입니다. 그리고 스누피는 알아도 오히려 찰리브라운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도 꽤 많을 거 같습니다.
이쯤 되면 왜 계속 스누피 얘기 중에 나오는 피너츠는 또 뭐야 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네요. 피너츠는 스누피가 나오는 만화의 원래 제목입니다. 귀여운 친구들이 아주 가득하죠. 하지만 마냥 귀여운 점을 강조하지는 않습니다. 친구들은 화내고 싸우기도 하고 가끔 투덜거리지만, 어떤 날은 즐겁게 놀기도 합니다.
심리적 의존증 중에 불안감을 줄이려고 애장품을 곁에 두는 행위를 블랭킷 증후군이라 무르는데 이는 등장인물인 라이너스가 항상 가지고 다니는 담요에서 유래합니다. 신기하죠? 이 작은 철학가들의 이야기를 보고 있으면 곰곰이 생각할 거리도 많습니다. 물론 50년간 연재되어 분량이 어마어마하지만 일단 한 권, 시작해 보면 어떨까요? 저도 아직 읽고 있는 중입니다. 50년의 시간이 한 번에 읽히지는 않을 거예요. 덧붙여, 제주에 가시면 스누피 가든 한 번 가보세요. 참 좋아요.
찰스 M. 슐츠가 빚어낸 전설적인 캐릭터 찰리 브라운과 친구들을 드디어 완전판으로 만난다찰리 브라운, 스누피, 슈뢰더, 루시, 라이너스, 페퍼민트 패티 등 인기 캐릭터들로 기억되는 만화 『피너츠 완전판』의 마지막 권인 25권이 독자들을 찾아왔다. 찰스 M. 슐츠가 50년간 연재했던 걸작 코믹 스트립의 일일 연재분과 일요 특별판을 하나도 빠짐없이 수록한 『피너츠 완전판』의 마지막 권은 1999년에서 2000년에 걸친 연재분을 모두 모았다.『피너츠』는 이발사의 아들로 자라난 찰스 M. 슐츠의 자전적 캐릭터인 찰리 브라운과 그의 친구들을 통해 때로는 코믹하고 때로는 날카롭게 세상을 그려낸다. <피너츠>의 미덕은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내면서도 품위와 균형을 잃지 않는 데에 있다. 그래서 반세기 동안 전 세계 75개국, 21개 언어로 3억 5천만 명에 달하는 독자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었고, 지금까지도 문화적 코드의 일부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한국판 <피너츠 완전판>은 판타그래픽스 출판사에서 출간된 원판의 내용을 충실하게 수록했다.
“바라건대 이 책이 여러분으로 하여금 삶을 더 순조롭게, 자기답게 살아갈 수 있게 도와주었으면 합니다. 이 책에 담긴 지혜 중 몇 가지는 제 삶의 중추였습니다. 생각보다 일찍 죽을 날을 받아 든 지난 몇 년간은 더욱 그러했지요. 여기가 모든 것이 끝나는 곳이 될 것입니다. 아니, 어쩌면 시작하는 곳이 될 수도 있고요” - 프롤로그 9쪽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책 제목만으로도 잠시 멈춰 고요함 속에서 생각하게 되는 책입니다. 1961년 스웨덴에서 태어나 대학 졸업 후 다국적 기업에서 근무하며 스물여섯 살에 임원으로 지명되었지만, 사직서를 내고 태국에서 파란 눈의 스님이 되어 17년간 수행하고 2018년 루게릭병을 진단받아 2022년 숨을 거둔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 작가의 이 책은 많은 독자에게 깊은 통찰과 위로를 준 베스트 셀러입니다. 삶의 폭풍우를 만난 순간에, 정답과 확신을 과도하게 강요받는 현대인에게 진심을 다하되, 집착하지 말고, 틀릴 수도 있음을 인정하라고 다독여 줍니다.
“여덟살 때였습니다. 할머니 댁에서 부엌 창문을 바라보던 저는 우뚝 멈추었습니다. 제 안에서 들끓던 온갖 소음이 순식간에 가라앉았습니다. 어디를 봐도 눈부시게 아름다웠습니다. 눈물이 고이고 가슴이 따뜻해졌습니다. 그것이 감사가 아니었을까 싶어요.” - 본문 15~16쪽
저자는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의식하며 살아가는 의식적 현존상태를 추구하라고 말해줍니다. 현재 하는 일에 온전히 집중하고 진실을 마주하는 태도를 중요하게 여기는 연습을 하다 보면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억지로 긍정적인 사고를 권장하며 일시적인 눈속임에 머무르려고 하지 말라고 전합니다.
삶에 잘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은 미래의 일에 덜 신경 쓰고 현재에 더 충실하며, 여유를 더해주는 한문장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라는 강력한 주문을 되뇌며 긴장을 풀고 가벼운 산책길 나서 보시기 바랍니다.
2022년 1월,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 ‘망설임도, 두려움도 없이 떠납니다’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거대한 애도의 물결이 스웨덴을 휩쓸었다.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 수많은 스웨덴인을 불안에서 끌어내어 평화와 고요로 이끌었던 그는 2018년 루게릭병에 진단받은 후에도 유쾌하고 따뜻한 지혜를 전했다.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는 20대에 눈부신 사회적 성공을 거뒀지만, 모든 것을 버리고 숲속으로 17년간 수행을 떠났던 저자의 여정과 깨달음, 그리고 마지막을 담은 책으로 세대를 불문하고 독자들에게 삶의 의미와 희망을 되찾게 하며 국내에서 베스트셀러의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 출판사 서평 중에서
성공회대 사회학 교수이자 <인권사회학의 도전> <인권의 최전선> 등 다수의 인권 관련 저서를 낸 인권 학자 조효제 저자는 <탄소 사회의 종말-인권의 눈으로 기후 위기와 팬데믹을 읽다>라는 책을 시작으로 2022년 또 한 번 인권과 환경을 같은 영역으로 다룬 <침묵의 범죄 에코사이드>를 펴냈다.
저자는 기후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인권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소수자에게 관심을 가질 때 기후 위기의 현실을 직시하게 되며, 평등과 다양성을 추구함으로써 생명을 존중하는 마음도 가질 수 있음을 알려준다. -김지혜(강릉원주대학교 교수)
책은 총 4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1장 : 야누스의 비극은 어떻게 벌어지는가?’에서는 환경파괴와 인권 파괴가 함께 일어난 사례들을 유형별로 소개한다.
‘제2장 : 지구, 인류를 법정에 세우다’에서는 생태 파괴를 둘러싼 투쟁의 역사에 관한 이야기와 에코사이드(ecocide, 생태계나 자연 환경을 파괴하는 행위)와 제노사이드(genocide, 특정 인간 집단을 전부 또는 부분적으로 파괴하려는 행위)의 개념을 연결한다.
‘제3장 : 자연에게 권리를 주자’에서는 자연권(nature right)이라는 개념을 제안하고, 인간 중심주의를 넘어서 인권 개념을 재구성할 필요가 있음을 이야기한다.
마지막 ‘제4장: 공존을 위한 지도 그리기’에서는 현재의 사회경제 시스템에서 인간의 사회계와 자연의 생태계가 지속 가능한 균형을 이룰 수 있을지에 관해 논한다.
미세먼지라는 것을 자각했던 것이 2017년도이다. 외출을 나섰을 때 짙은 회색의 자욱한 안개와 매캐했던 냄새가 아직도 또렷하다. 거대한 자연의 회복을 위해서는 개인보다는 국가의 역할이 크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로부터 8년이란 시간이 흐르는 동안, 파괴되는 환경에 적응하며 최소한으로 나를 보호하는 방법 찾기에만 급급했지, 기후 위기에 대해 제대로 생각해 볼 시도는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는 것을 이 책을 읽고 깨달았다.
어떠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문제점에 대한 이해와 분석이 필요하다. 기후 위기를 인권위기와 동등하게 보는 관점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독자들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저자의 논점이 기후 위기에 대해 몰입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문제점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회복을 위한 첫걸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기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지속가능성의 실천을 시작해야한다. (중략) 기후-생태 위기의 근본 원인을 따져보고, 사회 불평등을 환경문제와 연결할 줄 아는 눈을 길러야 한다. (p.318)
책에는 이사도라 던컨의 이야기가 나온다. 고유의 영혼을 몸짓으로 담아내는 행위를 춤이라 했던 맨발의 무용수 이사도라는 자아를 완성하고 새롭게 빚어내기 위한 춤을 췄다. 편견에 찬 시선을 완강히 거부하는 그녀의 몸짓은 관객의 호응을 끌어내며 현대무용의 서막을 열었다.
저자는 강릉에서 태어나 서울대에서 사회학과 법학을 공부했고, 휠체어를 탄다. 이후 변호사로 활동하며 2020년부터는 안무가이자 무용수로 무대에 오르는 삶을 살고 있다.
장애인 무용수로서 저자는 중력의 굴레를 그만의 형태로 벗어낸 자유로운 영혼을 꿈꾼다. 그가 전하는 몸짓 이야기는 뻔하지 않다. 독자로 하여금 자신을 성찰하게 하는 강인한 서사다.
“당신이 나를 배려해 내 앞에서 발레를 추지 않는다 하여 우리가 온전히 평등해지는 것은 아니다. 발레를 잘 추는 ‘능력’으로 당신은 내가 모르는 세계에 접속하는 다양한 방법을 나에게 제안할 수 있다. 내게도 춤출 ‘힘’이 있음을 깨달은 지금 나는 발레를 추는 당신의 능력이 나보다 뛰어나다는 데 좌절하지 않는다.” 본문 중에서
“모두에게 동등하게 작용하는 힘(중력)에 봄을 온전히 맡기면서도, 동시에 그 힘에 맞서는 각자의 몸의 기술(능력) 사이에서 움직이기, 그것이 내가 아는 좋은 춤. 잘 추는 춤이다.” 본문중에서
1부 ‘빛 속으로’에서는 저자의 몸이 억압되어 ‘불거지지’ 말 것을 요구받던 유소년기에서부터 춤을 시작하면서 무용수로서의 삶을 담아내는 한편, 저자의 사유에 영감을 준 현대 무용수들의 사례를 꼼꼼히 수록했다. 2부 ‘닫힌 세계를 열다’에서는 장애인 무용수들의 이야기를 담았고, 3부 ‘무용수가 되다’에서는 춤을 통한 경이의 발견과 공동체적 폭력을 예방하는 예술의 순기능에 대해 말하고 있다.
“평소 우리는 타인과의 접촉을 극도로 꺼린다. 우리에게 낯선 접촉은 불쾌한 경험을 뿐이다. 자의식의 경계를 완화해 낯선 타인을 받아들이고, 그 사람의 물리적 몸을 만지고 그 몸에 기대는 경험은, 예민하고 고립된 삶에 작은 경이를 창출한다.” 본문 중에서
내면에 언제부터인지 알 수도 없이 오랜 기간 깊이 침전하여 고립된 자아가 있다면 책을 통해 마음을 환기시키고 더욱 크고 넓은 세계와 소통하는 치유를 경험해 보자. 자신의 영혼을 춤으로서 해방시킨 장애인 무용수의 이야기가 독자의 삶에 기분 좋은 리듬을 선물할 것이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불편함을 피한다. 불편함은 우리를 긴장시키고 기존의 방식대로 반응하거나 대처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러나 이 책은 관점을 바꾸어 불편함이 우리에게 주는 유익에 대하여 말한다. 신선한 관점의 이 책은 각종 유명 인사들의 추천서가 붙은 교양 인문학 분야 베스트셀러 도서이며 아마존 분야에서 200주나 연속 베스트셀러 도서로 선정되었다.
저자인 마이클 이스터는 건강 분야의 저널리스트이자 행동 변화 전문가이다. 그는 현대인의 건강 그리고 삶의 진정한 행복과 의미에 관해 탐구해 왔다. 그는 알코올 중독자였고 삶의 중심을 잡지 못하자 알래스카 툰드라로 약 한 달간 순록사냥의 여정을 떠난다.
저자는 여행을 앞두고 기대하던 것도 잠시 생존을 위해 각종 훈련을 하고 준비한다. 여정에서 그는 여러 가지 위기 상황을 맞닥뜨리지만, 그 위기에서 오는 불편감은 오히려 저자가 생명력을 느끼게 한다. 야생적인 식단, 고립, 따분함, 위험성 이 모든 것이다. 한 편의 사실적인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하다. 그는 이 시간이 불편함의 극치였지만 감각과 생존의 본능을 회복하는 여정이었다고 말한다.
현대 문명의 정점에서 세상은 보다 풍요로워졌고 안락하고 편리하다. 이 생활에 적응한 우리는 본능적으로 편안함과 효율성을 추구한다. 그러나 문명이 발달할수록 사람들은 더 우울과 피로를 느끼는 역설 속에 살고 있기도 하다.
현대인의 만성 질환처럼 거론되는 것, 예를 들어 우울감, 만성 피로, 무력감, 스트레스 증후군, 약물 중독, 각종 정신 질환 등. 저자는 이런 질환의 발생 이유가 어쩌면 나태해진 편안함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가끔 삶을 환기해 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제거하고자 했던 여러 가지 불편함의 가치에 대하여 새롭게 생각해 본다.
불편은 단순한 고통이 아닌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주고 삶의 활력을 회복시키는 재료가 될 수도 있다. 죽지 않을 정도의 적당한 불편은 정서적 내구력, 정신을 오히려 단단하고 강하게 만든다. 역경에 대한 저항성과 인격의 성장, 삶을 지탱하는 근력을 키워준다.
일상에서 시도해 볼만한 불편감을 감수할 선택지들이 있다. 저자가 추천하는 방식 중에 내가 시도해 볼 불편감은 스마트폰 없이 보내는 따분함 즐기기이다. 그리고 현재 순간에 일어나는 일을 해석이나 판단 없이 의식적으로 집중하고 몰두해 본다.
가끔 나의 죽음을 의식하는 것도 어쩌면 불편한 상상이지만 오히려 현재 주어진 것들과 삶의 의미와 감사를 회복할 수 있다. 죽음의 문턱을 경험한 사람들이 종종 새로운 삶의 목표를 두고 환경을 정리하고 새롭게 세워 보듯이 말이다.
“우리는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다가 피곤하거나 지루해지면 앉아서 쉰다. 아니면 시원한 음료나 정수기 물을 마신다. 또는 스마트폰의 노래를 바꾼다. 정해놓은 시간, 거리, 세트와 반복 횟수가 끝나면 사우나에 들어가 앉는다. 오늘 당장 먹을 것을 위해 애쓰던 시절로 돌아가자는 얘기가 아니다. 우리의 편안한 세상은 위대하다. 하지만 편안함으로 기울어진 결과, 우리의 신체는 도전받을 일이 거의 없고, 그 대가로 건강과 강인함을 잃어가고 있다.” _358쪽.
상실과 죽음이 바로 눈앞에 놓인 49일의 시간 속에서, 안과 슌이 끝내 마주한 것은 어떤 거창한 해답이 아니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존재하지만 너무 일상적이어서 쉽게 말로 옮길 수 없는, 지극히 평범한 인생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가깝다.
<도롱뇽의 49재>는 이 조용한 깨달음을 통해, 우리가 당연하게 믿어 온 ‘독립’이라는 개념을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개인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내 몸과 내 감정을 스스로 통제하고 책임질 수 있어야 비로소 어른이 된다고 믿어 왔다. 그러나 아사히나 아키의 <도롱뇽의 49재>는 그 믿음이 얼마나 불완전한지, 조용하지만 깊은 방식으로 흔들며 이 소설은 완전한 독립이라는 관념이 실은 얼마나 취약한 환상인지를 묻는다.
주인공 ‘안’과 ‘슌’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쌍둥이보다 훨씬 더 밀접하게 얽혀 있다. 이성적이고 철학적인 안과 본능적이고 감정적인 슌은 끊임없이 충돌하지만, 작가는 두 사람의 시점을 교차시키며 그 경계를 의도적으로 흐린다.
독자는 어느 순간 누가 누구의 생각을 하고 있는지 분간하지 못하게 되는데, 이는 타인의 습관이 어느새 나의 일부가 되고, 타인의 상처가 나의 밤을 잠 못 들게 했던 우리의 경험을 떠올리게 한다.
이러한 의식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공간은 소설 속 큰아버지의 장례식이다. 제목이 암시하듯, 이 장면은 작품의 주제가 응축되어 드러나는 지점이다. 우리는 죽음을 끝이라 부르지만, 소설은 그것을 누군가의 삶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순환’으로 그린다.
큰아버지의 죽음은 안과 슌에게 소멸에 대한 공포를 안기지만, 동시에 자신들이 결코 고립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자각하게 하는 역설적인 안도감을 가져다준다.
‘도롱뇽’과 ‘음양어’의 이미지는 소설 속 가장 의미 있는 상징이다. 이 순환의 상징을 통해 완전히 나만의 것이라고 부를 수 있는 몸이나 기억이 과연 존재하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그 질문들 또한 역시 독립에 대한 강박을 풀어 주는 방향으로 작용하며 그동안의 피로는 ‘우리는 모두 얽혀 있다’라는 감각 속에서 연대와 치유의 정서로 전환된다.
서로의 삶 속에서 얽히고 스며드는 관계는 결국 삶의 무게를 나누는 일이 된다. <도롱뇽의 49재>는 이 피할 수 없는 과정을 거쳐서야 비로소 인간이 인간다워진다는 사실을, 고요한 언어로 드러낸다.
그 감각은 작품 속 언어를 통해 더욱 또렷해진다.
“오른손이 막대를 내던지고 주먹을 꽉 쥐었다. 가슴에 뭉클하고 뭔가가 밀려들어 와서, 나는 거기에 포개듯 왼손을 꽉 쥐었다. 그러자 가슴에서 하나가 되는 감각에 기쁨이 솟아올랐다. 가슴이 간질거려서 웃음이 나왔다. 두 숨이 포개지더니 가슴 속에서 목소리가 한데 울려 퍼지며 부풀어 올랐다.” 181p.
저자 최진영은 <단 한 사람> <구의 증명> 등을 통해 인물들의 상처와 회복을 그려온 작가다. 삶의 가장 어두운 지점을 비추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희망을 이야기한다. 이전에 읽은 <단 한 사람>은 극단적인 상황 속 사람들의 마음을 섬세하게 다룬 작품으로 타인의 고통을 끝까지 바라봐주는 의미를 질문한다. <단 한 사람>을 감명 깊게 읽고 자연스럽게 최진영 작가의 다른 작품인 <내가 되는 꿈>으로 걸음을 옮기게 되었다.
주인공 태희는 어린 시절 부모님과 떨어져 외가에서 자라며 가족에게 받지 못한 안정감과 애정의 빈자리를 품고 살아왔다. 성장하며 가족, 친구 등 주변인과의 관계에서 이해받지 못하거나 보호받지 못한 채 감정과 기억을 조용히 눌러두는 방식을 배우게 된다. 성인이 된 뒤에도 그 상처들은 내면 깊숙한 곳에 남겨져 있다.
태희는 괜찮은 척 살아가고 있지만, 어느 날 예기치 못한 사건과 마주하며 오래전 마음속에 묻어두었던 긴장과 불안을 떠올리기 시작한다. 태희는 옛 기억과 현재의 모습을 통해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고 내면을 마주한다. 한 사람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움직임과 변화가 얼마나 깊고 복잡한지 보여주며 큰 사건이나 화려한 반전 없이 인물의 고통을 섬세하게 그려나간다.
<내가 되는 꿈>은 제목에서부터 품게 되는 질문을 계속해서 이야기한다. 제목만 보고 미래의 희망이나 목표에 관한 이야기라 짐작했지만, 그 꿈이란 결국 나 자신이 되는 일이라는 의미이다. ‘나 자신이 되는 것’은 어떤 상태이며 우리는 언제 진짜의 나에 가까워지는가. 소설 속 주인공을 통해 현실의 나는 어떠한지 생각해 본다.
작가가 말하는 꿈이 단순한 희망이나 미래가 아니다. 오래도록 부여잡고 있는 두려움, 외면해온 진심과 마음의 조각까지 모두 포함한 넓은 의미의 자기 자신이다. 더 나은 내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는 과정에 관한 이야기다. 책장을 덮고 나면 조금은 단단해진 마음으로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해결될 일이라면 걱정하지 말고 해결되지 않을 일이라면 걱정하지 말자.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고 생각한 적도 없지만 지금과 같은 나를 상상한 적도 없다. 살아갈 날보다 내가 분명히 살아온 지난날이 너무 아까워. 겨우 이렇게 되려고 그렇게. 아무도 내가 될 수 없고 나도 남이 될 수 없다. 내가 될 수 있는 건 나뿐이다.
한 작가의 작품을 연달아 읽으면 작가의 세계관을 더욱 선명하게 볼 수 있다. 최진영 작가는 누군가의 고통을 바라보는 일과 자신의 상처를 들여다보는 일이 결국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소설로 전달한다.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나를 이해해야 하고, 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나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독자에게 당신이 되는 꿈은 이미 당신 안에 있다고 말하고 있다.